앎과 믿음 다시 하나로 토마스 아퀴나스 견해를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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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앎과 믿음 다시 하나로 토마스 아퀴나스 견해를 바탕으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앎(知)’과 ‘믿음(信)’, 다시 하나로
-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해를 바탕으로 한 ‘知’와 ‘信’의 관계의 새로운 종합 -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앎’과 ‘믿음’의 철학사적 관계
ⅰ. ‘앎’과 ‘믿음’의 협력적 관계
ⅱ. ‘앎’과 ‘믿음’ - 배제적 관계의 시작과 왜곡의 발생
Ⅲ. 앎과 믿음의 이분법
ⅰ. 이성 도그마(dogma)의 붕괴
ⅱ. 현대 ‘앎’과 ‘믿음’의 새로운 관계 설정 방향
ⅲ. 현대 ‘앎’과 ‘믿음’의 관계 설정 방향의 한계 - ‘앎’과 ‘믿음’의 이분법
Ⅳ. 이분법 해체
ⅰ. 이분법의 허위
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앙의 확실성과 불확실성” - 이분법 해체의 근거
Ⅴ. 새로운 ‘앎’-‘믿음’의 관계 - 이분법을 넘어선 화해와 주체간의 연민
Ⅵ. 맺는 말
Ⅰ. 들어가는 말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여러 가지 대처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은 자연 현상이나 짐승과 같이 본능적인 해결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즉각적인 반응을 하기에 앞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는 면에서 그들과 다르다. 문제제기는 상황을 관조(觀照)하게 함으로써 사태의 근원을 바라보게 하는데, 모든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에는 인간의 존재론적인식론적 유한성이 그 근원에 자리잡고 있다. 상황을 앞에 두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철학(哲學)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결국 인간의 존재론적인식론적 유한성은 철학이 제기한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철학의 책임이며, 필자는 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인간이 외부 대상을 대하는 두 양식- ‘앎(知)’과 ‘믿음(信)’-의 관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 소논문에서는 ‘앎’과 ‘믿음’의 철학사적 왜곡을 해체하고,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의 견해를 바탕으로 그 둘을 새롭게 종합함으로써, 철학의 인간의 존재론적인식론적 유한성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Ⅱ. ‘앎’과 ‘믿음’의 철학사적 관계
ⅰ. ‘앎’과 ‘믿음’의 협력적 관계
‘앎’과 ‘믿음’의 관계는 구약성서에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결코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이사야 7장 9절)”라고 언급된 바와 같이, 인류 지성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회의 사상가로부터 시작된 논의에서, ‘앎’은 희랍적 교양을, ‘믿음’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의미했다. ‘신앙’과 ‘이성’의 관계는 스콜라학에 있어서 인간이 진리를 목표로 하는 탐구에 있어서 두 가지 측면 혹은 두 가지의 존재양식으로 구별되면서도, 끝까지 하나의 탐구 안에서 종합통일되어 있어서 분리되는 일은 없었다.
ⅱ. ‘앎’과 ‘믿음’ - 배제적 관계의 시작과 왜곡의 발생
스콜라학 내부에서는 둔스 스코투스(1265~1308)이나 윌리암 오캄(1285~1349)과 같은 학자들에 의하여 신앙의 순수성을 확립하기 위한 ‘신앙’과 ‘이성’의 분리가 시작되었다. 스콜라학의 이러한 준비는 근대 사상에 의해 계승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신앙’과 ‘이성’의 분리에서 그 중점이 이성의 측면으로 옮겨갔던 것이다. 근대 사상의 특징으로서 신앙과 이성의 분리는, 보다 엄밀히 말하면, 이성이 자기 충족적이며 완결되어 있다는 주장이며, 나아가서 이 주장이 자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