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금융조합 그 수탈의 역사 1937년 45년까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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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어학 금융조합 그 수탈의 역사 1937년 45년까지를 중심으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금융조합 그 수탈의 역사’
(1937년~45년까지를 중심으로)
#목차
머리말
본문
1장. 금융조합의 역사
2장. 수탈자로서의 금융조합의 역할
1절. 전시 농업정책과 금융조합의 역할
1. 농업인구의 조직화
2. 식량 증산을 위한 자금공급
2절. 금융조합 농업대출금의 성격
1. ‘자작농 토지구입자금’ 대출과 자작농계의 설립
2. 농업대출금을 통한 농민동원의 한계
3장. 815후 금융조합의 재편과정
1절. 815후에 펼쳐진 금융조합의 재편
2절 재편과정의 그 의의
맺음말
머리말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정책과 그 수탈성에 역할을 담당했던 금융조합은 여러 가지 시각에서 연구되고 있다. 금융조합이 한국정부에 의해서 설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통감부가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하였고, 일본제국주의의 농정기관으로 운용되었다는 점에서 금융조합의 설립 자체에 대해서 일본의 의도에만 관심을 표명하였다. 따라서 일제의 금융조합정책 분석도 농민수탈성이 강조되지만, 그 수탈의 논리와 성격을 명확하게 밝히기는 부족하였다. 이번 주제를 잡게 된 것도 전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이와 관련하여 크게 홍역을 치룬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쟁점의 연장선상에서 한 번 연구해 볼 문제로 금융조합의 서기가 과연 친일행적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 역시 우리 역사 속에서 일본의 의도에만 과연 우리가 집착하고 단언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금융조합의 특수성상 우리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또한 해방 후에는 새로운 농업협동조합의 설립문제와 관련해서 금융조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연구들도 활발히 진전되고 있다. 농지개혁 후 설립된 농업협동조합중앙회의 연구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연구가 금융조합을 신국가의 건설과정에서 일정한 변화를 거쳐 농협으로 개편된, 농협의 전신으로서 서술하고 있다.
앞으로 다루게 될 내용은 금융조합의 역사, 그리고 1937년부터 1945년까지 그들의 수탈의 구체적인 내용들이다. 그리고 그 수탈의 역사를 뒤로하고 해방 후에 해체되는 과정에서 어떤 홍역을 치루고 지금의 농협이 탄생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본 문
1장 금융조합의 역사
금융조합은 1907년에 지방금융조합(농촌)으로 출발하여 1918년에는 금융조합(도시, 농촌)과 도금융조합연합회로 확대 개편되고 1933년에는 도연합회를 대체하여 조선금융조합연합회를 발족시키는 발전을 하였다. 1906년 설립된 농공은행의 보조기관으로 설립되어 처음부터 관제조합으로 출발하였지만, 독일의 라이파이젠 협동조합을 표방하여, 1914년에는 일시 조합원의 총회구성 및 의결권을 부여하기도 하였으나, 1918년 이후 금융조합령이 개정될 때마다 후퇴를 거듭해서, 시종 관제조합을 유지하였다. 또 사업도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겸영으로 출발했지만 신용사업 위주로 운영해 오다가, 산업조합이 허용되면서 1929년에 일시 경제사업을 폐지했으나, 1935년에 산하에 식산계를 조직하면서 다시 구판사업을 담당하였다. 장종익 ‘한국협동조합운동의 역사와 현황 ; 일제하 관제조합
2장 수탈자로서의 금융조합의 역할(1937-1945년 중심으로)
1절. 전시 농업정책과 금융조합의 역할
1. 농업인구의 조직화
1930년대 식민지의 농업정책의 목적은 개별 농가의 경제갱생을 통한 식민지체제의 안정이었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는 ‘시국인식 및 생업보국의 철저한 시행’을 통해전쟁에 필요한 식량을 증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금융조합으로의 채무집중이라는 형태로 조합에 종속하는 농민을 창출하여 그 지배의 강화가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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