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의 진실 중국 전통과학은 왜 근대과학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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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통과학은 왜 근대과학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는가?
Ⅰ. 요약
근대 이전, 중국의 과학은 세계적으로 앞서가고 있었으며 서양의 과학보다 인류 문명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로는 서양의 과학이 발전하면서 중국의 과학을 능가 하는 수준이 되었다. 근대를 기점으로 일어난 이 대조적인 현상은 왜 중국의 과학이 근 대까지 발전하지 못하였으며 서양의 과학 혁명이 일어났는지 의문을 환기시키고 있다.
먼저 중국과 서양의 과학기술을 을 통해 분석하였다. 중국은 꾸준히 과학기술이 발전한 반면, 서양은 한 차례 급속한 쇠퇴현상이 일어났으나 르네상스를 바탕으로 재도약을 하면서 다시 상승세를 타게 되었다. 이론, 실험, 기술로 분야를 나누었는데 중국의 그래프를 보면 이 3가지의 분야가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하였다. 기술이 가장 높은 수치를 차지했으며 그다음으로 이론과 실험이 뒤따랐다. 이렇게 중국이 기술위주의 발달을 시작한 가운데 서양은 중국의 수치와 대조적이다. 고대 그리스부터 대체적으로 이론의 수준이 다른 분야보다 높았으나 16세기 이후 과학이론, 과학실험, 기술의 수준이 비슷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 통계표는 이론, 실험, 기술이 근대 과학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위의 통계표에서 가볍게 분석하자면 이론, 실험, 기술사이의 순환관계가 근대 과학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순환가속 과정은 크게 2가지로 나뉘었다. 첫째로 ‘이론→실험→이론’ 이다. 과학자들은 처음에 이론이나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한다. 이 단계에서 과학자들은 실험을 구상하고 계획을 세운다. 실험은 과학자의 이론이나 가설을 검증하여 명제를 정당화하거나 오류가 있음을 지적한다. 두 번째 순환가속기제는 ‘기술→(이론과 실험을 포함하는) 과학→기술’ 이다. 기술을 더 정교하게 하기 위해 또 다른 이론을 필요로 하고 이 이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이 발명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론, 실험, 기술은 과학기술 가속 발전의 내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이 3가지의 분야가 독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서양의 과학에 뒤처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이론, 실험, 기술의 상호 협력의 구조를 성립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먼저 논리구조적 이론인 ‘구조적 자연관’을 바탕으로 과학이론이 성립되어야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이론과 실험의 반복에서 근거가 성립되게 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실험이 통제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실험을 ‘수공실험’ 이라고 정의한다. 수공실험을 통해 누구나 어떤 실험으로부터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우연으로 인한 문제를 방지 할 수 있다. 결국 중국의 과학은 수공실험을 확립하지 못하였고 구조적 이론이 성립되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기술구조의 개방성이다. 중국은 장기적인 봉건제로 인해 기술의 가치가 높지 않은 반면 서양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술을 상품화 할 수 있었다. 즉 구조적 자연관을 기본으로 한 이론, 수공실험의 실험, 개방적인 기술의 순환가속기제를 갖추어야 과학이 발전할 수 있다.
근대 이전 중국의 과학은 순환가속기제가 결여되었다고 제시했는데 이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는 중국 전통 과학기술의 특징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4대 발명품이라고 하는 나침반, 종이, 화약, 인쇄술은 중국에서 이루어졌다. 이 발명품들 의 기술은 사회구조와 사회의 수요에 의해 발명된 것이다. 당시 중국 사회는 진시황의 강 력한 통일 제국의 수립의 수요를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의 기술은 모두 ‘대통일을 위한 기술’ 로 일컬어졌다. 대통일형의 기술은 중국의 봉건사회라는 구조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개방적이지 못하였다. 결국 대통일을 위한 사회 구조 와 수요 안에서 순환가속기제 중의 하나인 ‘기술→(이론과 실험을 포함하는) 과학→기술’ 이 발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기술이 폐쇄적이었다면 이론과 실험은 어땠을까? 이론과 실험은 문화구조의 영향을 받았다. 중국은 유가 사상이 가장 지배적이었는데 이런 사상적 제한으로 객관적인 과학이론을 수립하지 못하였고 더불어 수공실험도 불가능 하였다.
그렇다면 근대 이전인 중세에 서양은 중국보다 수준 높은 과학기술을 이루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서양은 왜 근대 과학기술구조 형성에 성공하고 중국은 실패하였을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봉건사회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정착이다. 근대과학구조를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다수가 수용할 수 있는 원칙의 발견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들을 바탕으로 수공실험이 행해져야 하며 구조적자연관이 확립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원시과학구조’라고 일컫는다. 또한 이런 원시과학구조가 사회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을 ‘원시과학구조의 사회화 과정’ 이라고 한다. 서양은 기하학에서 파생된 원시과학구조가 있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도 묵경이라는 원시과학구조는 있었으나 자리잡는 데는 실패했다. 또한 유가사상의 지배하에 여러 이론들이 실용적인 학문에 흡수되는 이론의 기술화 경향이 발생하였다. 즉 중국은 제한된 봉건제 하에서 원시과학구조의 사회화에 실패했지만 서양은 자본주의에 정착함으로써 봉건주의를 탈피할 수 있었다.
과학의 사회화가 이루어지려면 구체적인 방향 같은 요소가 필요하다. 즉, 패러다임의 기능이 필요한 것이다. 패러다임은 어떤 영역에서 명확해진 방법을 따라 다른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국은 선진적이고 뛰어난 연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시과학구조가 장착하지 못했었다. 이로 인해 패러다임이 형성되지 못해 근대과학이론구조를 수립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패러다임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대통일 제국하의 이론의 기술화 경향이나 유가 사상도 하나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