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의 생애와 문학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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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규보의 생애와 문학 세계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 시대배경
“문관(文官)을 쓴 자는 비록 서리라도 죽여서 씨를 남기지 말라”
무신들의 외침은 단호했다. 의종 24년(1170) 8월, 그 동안 쌓여왔던 무신들의 불만이 드디어 터졌다. 무신들의 칼날에 무수한 문신들이 죽음을 당했다. 무신정변으로 문신을 대신하여 무신들이 권력을 차지했지만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였다. 게다가 원나라의 침략까지 당했으므로 고려 내부의 정치 및 문화 전반에 걸친 대변동이 일어났다. 이렇듯 혼란한 시대상황은 문학사상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고려 전기에는 토착적인 전통과 중세 공동문화가 서로 갈등하고 있었으나 대체로 중세 공동문화 중심으로 개편되었다. 이에 대해 무신들은 반대하였다. 거기에 신분의 상승을 이룩할 수 있다면 기꺼이 제한된 기구 속에 편입되어 이전의 전문 문사의 기능을 수행하는 새로운 문인층이 등장했다. 이들은 왕실에 소속된 문인이 아니라 새로운 세도가에 소속되었다는 점에서 부용(附庸)적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새로운 세도가 즉, 최씨가문의 문인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고민은 자아정체성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문학, 문학인, 나아가 민족 문제와 민중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것이다.
2. 이규보의 생애
이규보(1968~1241)는 무인 정권기에 관료와 문인으로서 활약하였다. 그가 태어난지 이태만에 무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후 한 세기 간 국왕의 족위와 폐위, 관리의 선발, 대외전쟁의 수행 등 국가의 주요 정책은 이들이 전단했다. 이규보는 이러한 시대배경 속에서 일생을 보냈다. 이규보의 청년기에는 수도 개경에는 이고,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교, 최충헌으로 이어지는 무인권력자간 권력쟁탈로 정치적 파행상이 거듭되었고, 지방에는 전 지역에서 농민항쟁이 일어났다. 청년기의 그는 이러한 시대상황아래서 관리가 되기 위해 과거 준비에 몰두하면서 학문 수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에 급제한지 10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미관직에 오를 수 있었지만, 첫 관직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다 40세가 되던 해에 최충헌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 뒤로 이규보는 한 번의 좌천을 제외하고 순탄한 관료생활을 하였다. 그는 최씨 부자의 발탁으로 벼슬길에 올라 관료로서 문인으로서 크게 활동하였고, 1241년에 생애를 마쳤다.
1) 이규보의 문학에 대한 시세계
이규보는 ‘시마’와 ‘시벽’에 매여 괴로워하였다. 그가 시문을 짓는 것은 인위적으로 하고자 해서이기보다, 물(物)에 촉발된 감흥(感興) 때문에 쓰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쓸 수 밖에 없는 경지로 내몰리는 까닭이라고 말하고 잇다. 쓰고 싶을 때에 쓰고, 쓰기 싫으면 안 써도 되는 것이 시가 아니고 일단 시마(詩魔)‘에 매이면 병중에도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 그의 시세계였다. 그러나 시는 단순한 감흥의 발산일 수 없고, 시문학으로서의 오묘한 자족적 세계가 있고 또 그렇게 되도록 형상화해야만 하기 때문에 천고에 남을 시경(詩境)을 개척하고 창조하는 작업은 그야말로 심간을 깎으며 여위는 고통을 수반하게 마련인 것이다. 이렇듯 시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은 마침내 에 대한 관심과 대결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