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과 직업윤리 제사와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을 받은 제사풍속에 관하여

 1  유학과 직업윤리 제사와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을 받은 제사풍속에 관하여-1
 2  유학과 직업윤리 제사와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을 받은 제사풍속에 관하여-2
 3  유학과 직업윤리 제사와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을 받은 제사풍속에 관하여-3
 4  유학과 직업윤리 제사와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을 받은 제사풍속에 관하여-4
 5  유학과 직업윤리 제사와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을 받은 제사풍속에 관하여-5
 6  유학과 직업윤리 제사와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을 받은 제사풍속에 관하여-6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유학과 직업윤리 제사와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을 받은 제사풍속에 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제사와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을 받은 제사풍속에 관하여...
1.문제제기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려온 나라. 이렇게 불리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윗사람을 공경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 오면서 그 의미와 실천이 다소 쇠퇴하기는 했으나, 오늘날에 우리사회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매김한 것은 다름 아닌 유교이다. 오늘날 다양한 종교를 가진 경우라도, 이러한 유교적인 내용 중에 일부를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물론 유교의 이름은 아니더라도) 도덕이나 가정교육의 이름의 형태로 배우기도 한다. 이 같은 유교의 기본이념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제사풍속에 관한 것이다. 종가집이나 장손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우 한 가정 당 매년 4-6회, 많으면 10회에 가까운 제사를 지내며 아무 생각 없이 친척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오는 모습은 그렇게 낯설지 않다.
이러한 조상을 모시는 제사가 어떠한 이유에서부터 시작하였는지 와 고대의 제사와 유교가 만나면서 변하여 온 과정,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유교적 마음과 제사, 마지막으로 유교적인 조상제사와 다른 종교들(기독교, 불교, 천주교) 과의 관계를 통한 현대사회에서의 제사가 가지는 의의에 대해서 글을 쓰려한다.
2.제사의 유래
고대부터 신명을 받들어 복을 빌고자 하는 의례로서 자연숭배의 제사 의식이 행하여 졌다. 하지만 자신의 조상을 숭배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이 원시적인 생활을 할 때 천재지변이나 또는 사나운 맹수 등의 공격과 질병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써 하늘이나 땅, 거목, 높은 산. 바다 등의 자연에게 절차를 갖추어서 빌었던 것이 제사가 발생한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천신, 지신, 신격화된 전설 속의 제왕들과 왕의 7대조와 시조에 이르는 조상에서부터 죽은 아버지, 그리고 일월성신을 포함한 자연과 자연현상에서 일상의 거처를 다스리는 작은 신들에게까지 이른다. 제사란 이들 대상에 대한 감사와 회귀의 의식인 것이다.
중국에서의 기원을 볼 때 공자 이전인 하나라와 상나라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당시 조상제사는 지금처럼 죽은 자에 대한 제사가 아니고 살아있는 증손을 높이는 의미에서 높은 곳에 앉혀 놓고 제사형식의 예를 갖추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후에 황제에게만 적용되던 것을 제후들까지 그리고 평민의 지휘가 향상된 춘추전국시대에 와서는 민중들도 따라하게 되고 이후 자신의 죽은 조상에게까지 제사를 지내게 된 것으로, 이러한 조상제사의 본의는 살아있는 어른에게 드리는 효의 한 예 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자연신에 대한 제사와 더불어 자기 조상신들에 대한 제사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조상신들에 대한 제사의 형태는 자기혈족의 신성화를 통하여 자기의 계급을 지키고자 했던 왕족에게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
고려시대에도 이러한 형태의 제사는 지속되다가 고려 말에 성리학과 "주자가례"가 도입되면서부터 현재의 조상제사의 형태가 갖추어지게 되었다.
고려후기 권문세족에 반발한 신진사대부들이 하나의 학문으로서 유교를 받아들여 학문에 정진하였고, 권문세족의 몰락하고, 신진사대부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또한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유교를 그 건국이념으로 선택함으로써, 유교사상이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조상제사는 유교가 낳은 주자학이 전래되면서 그때 이 조상제사의 의식도 함께 유입되었고 이것이 이성계에 의해서 민간에 널리 장려 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성리학의 토착화가 이루어지고, 예학이 특히 강조되면서 효행에 관련 된 규범도 일종의 풍습이 되어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양반이라면 누구나 예법에 맞는 삼년상이란 형태의 제사와 시묘살이를 지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