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관련 영화감상문 내 이름은 _ 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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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장애관련 영화감상문
‘내 이름은 칸’을 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눈-
‘내 이름은 칸’이라는 영화는 1학년 가을 즈음, 교양 수업을 들으며 본 적이 있는 영화다. 그때는 세계화와 지배담론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파악했었는데, 장애에 초점을 맞추어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주인공 ‘리즈반 칸’은 어려서부터 자폐증을 알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주 천재적인 실력을 보여 그저 남들보다 덜 현실적으로 소년으로서의 순수한 모습을 더 많이 간직한 사내라고 느껴진다. 우연히 만디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의 아들까지도 친자식처럼 기르지만 자신의 종교때문에 그 아들이 인종차별을 당하다 끝내는 목숨을 잃게 된다.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과정 중에 겪는 일들, 그에 대한 칸의 대처 등에서 칸의 때묻지 않은 마음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영화에서 칸은 어렸을 적에 굉장히 정서가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그 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엄마다. 하나하나 칸의 눈높이에서 설명해주고, 칸을 부끄러워하거나 창피해하지 않고 그저 관심이 더 많이 필요한 아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 맞는 보살핌을 보여준다. 이혼녀 만디라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나서, 만디라는 칸의 장애보다는 그의 순수함과 진실함을 더욱 눈여겨보며 하나의 인격체로 교감하며 마음을 나누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칸은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알며,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지 않으며, 가려진 본질 앞에서의 거짓에 흔들리지 않는다. ‘대통령을 만나서 이야기 해보라.’는 스치는 한마디에 자신의 아들을 위해 험한 여정을 하며, 대통령을 만나 돌아오는 길에도 홍수가 난 지역에 가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을 준다.
자폐증, 몇 년 전 많은 관심을 받았던 영화 ‘말아톤’이나 TV프로그램의 수영선수 ‘진호’,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 등 자폐아동에 대한 컨텐츠는 익숙하게 접해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조상이 묘를 잘못 썼다느니, 신께서 노하셔서 그렇다느니 하는 항간의 근거없는 낭설이 팽배한 것이다. 자폐아동의 경우 사회적인 의사소통에 가장 큰 문제를 보인다. 눈을 잘 맞추지 못하며 자기만의 방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커다란 관심을 보이지만 그 외의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두 가지이다. 칸의 엄마와 만디라처럼 무한한 믿음과 관심을 주며 사랑으로 보살피면 마음의 병도 점차 회복되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무지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녀의 상태를 적정한 시기에 파악하지 못한다든가,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알맞은 치료나 교육을 시키지 못했다든가, 또한 관련 프로그램이나 지원을 신청하지 못했다든가 하는 것이다. 아이의 육체적·정신적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여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부모된 도리인 것이다. ‘교육’은 ‘변화’를 가장 큰 모토로 한다. 식물이나 동물도 사랑을 주면 더욱 사랑스러워지고 건강해지듯이 사람도 역시 그러하다. 자폐아동은 바보나 등신이 아닌 사랑을 조금 더 필요로 하는 소중한 아이들인 것이다. 때때로 장애아동의 부모님들은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거나, 오히려 그 아이를 원망하며 그들의 손을 놓아버리는 경우까지도 나타난다. 눈을 맞추지 못하고 자기만의 방에 들어가버린 아이를 억지로 끄집어내려는 것보다는 그 안에 들어가 함께해주며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것은 그의 순수함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자폐를 신이 노한 것이라 표현하는데, 이는 하늘에서 주신 하나의 선물이나 경고가 아닐까 한다. 현대사회로 올수록, 자본이라는 매개체로 인해 개개인간의 관계가 점점 이해타산적으로 변하고 있다. 아무것도 재는 것 없이 하고싶은 것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좋은 것에 더 큰 애정을 표현하고 평생을 아이의 순수함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그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분명 있으리라고 본다. 이렇듯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보다 열등한 존재도 아니고, 무시당할 만한 존재는 더더욱 아니다. 키가 큰 사람, 작은 사람이 있고, 살집이 많은 체형, 마른 체형이 있고, 쌍꺼풀인 혹은 홑꺼풀인 사람이 있듯이 그저 몸이나 마음이 조금 다른 것일 뿐이다. 그들이 약해서 도움을 주고 동정을 주는 존재도 아닌 그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웃으며 살아가는 우리의 친구들인 것이다.
표현방법이 우리와는 조금 차이가 있어 우리가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지 그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사실은 나 역시도 장애인에 대해 거부감이라기보다는 왠지 모를 두려움과, 나의 그릇된 눈빛하나로 인해 그들에게 상처를 주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한 적이 많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을 계기로 하여 나의 시선을 다시 한 번 재고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