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hwp1. 들어가며
이 글의 구상은 누구도 흥행을 예측하지 못했던 영화 과 의 놀랄만한 흥행 성공에서 출발했다. 특별한 스타가 출현하지도 않고 대규모 예산을 들이지도 않은 과 비상업적인 소재와 다큐멘터리라는 한계를 지닌 의 흥행은 한국 영화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켰으며, 소위 ‘웰 메이드’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는 ‘입소문 마케팅’이 흥행에 커다란 힘을 보태준다는 양상을 직접 보여주었다. 과 의 흥행요인을 다룬「씨네21」의 특집에서는 완성도에 힘입어 입소문 마케팅을 가능하게 해주는 영화 자체의 힘과 경제 불황이라는 환경 속에서 따뜻한 가족 드라마에 대한 대중의 특별한 선호, 주거지역으로 들어간 멀티플렉스 극장의 영향력으로 중장년층이 유입된 것, 설 연휴 특수, 어려운 경제적 상황으로 값비싼 여가활동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대신 극장을 찾게 되는 사회적 배경 등을 두 영화의 흥행요인으로 들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두 영화가 대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국사회 내에서 상당한 정치적인 위치를 꿰차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그 신드롬 속에는 분명 당시 사회 속에서 정치적 상황이 원했던, 그리고 대중들이 원했던 그림이 분명 있을 것이며, 영화는 이것을 은연중에 펼쳐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이 두 영화를 정치적 맥락에서 분석하는 작업이 될 것이며, 이것은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정치적 지형도를 어렴풋이나마 그릴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2. 한국 사회의 정치의식의 마비화, 그리고 정치 혐오증
1) 크라카우어가 1920-30년대 독일사회를 바라보는 방식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 독일영화의 심리학적 역사」라는 저작에서 히틀러의 나치즘이 독일을 지배하기 직전까지 개봉됐던 독일영화들의 분석과 이 영화들이 대중들에게 수용되는 과정, 그리고 그 역을 통해 당시 관객들의 심리 및 정치적인 배경을 분석해 나가며 독일의 파시즘화를 면밀히 추적해 나간다. 그는 1924년과 1929년 사이의 독일 사회를 ‘안정된 사회’로 구분하며 당시의 영화들이 왜 미학적으로 퇴보했는지를 진단하고 있다. 당시 급증한 350만의 중산층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1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 제국의 권위주의적 의식에 젖어 있었고, 중산층의 지위를 유지하려 애썼으며, 나아가 이 시기에 적응하기 위해 기존의 자본주의체제에 대해 어떠한 변화나 혁명도 원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사회의 구조에 대해 무관심했으며, 크라카우어는 이를 ‘중립화’ 혹은 사회의 ‘마비상태’라 표현했다. 그는 영화가 이러한 성향에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당시 독일영화에서 유행하던 코미디 영화와 같은 미학적 퇴행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는 곧 다가올 파시즘에 대한 전조이며, 이미 영화를 통해 이러한 전조가 드러나고 있었다고 밝힌다. 크라카우어는 ‘안정화 시기’의 다음을 ‘전- 히틀러 시기’로 구분하고 대공황 이후의 독립영화들에 특징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대공황이 휩쓴 독일회사는 히틀러에게 커다란 힘을 안겨주었고, 영화 역시 이러한 시대적 맥락을 반영하였지만 그 표현법이 역설적이었다. 이 시기의 흥행작들은 영화사운드의 발전으로 노래의 영화 속 삽입과 함께 하나같이 관객들에게 환상을 제공하는 특징이 있었다. 이 시기 영화들의 노래와 환상들은 결국 그 시대의 ‘대참사의 공포’를 반영하는 일종의 역설인 것이다. 한편 로버트O. 팩스턴은 파시즘 대두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밝혀냈는데, 1880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세계화로 인한 자국 국민들의 경제적 위기와 여러 이념들 사이의 다툼,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파고든 파시즘의 대중정치 전략이 이것이다. 즉, 모든 현재체제의 ‘안티테제’로 파시즘이 등장한 것이다. 크라카우어의 논의와 함께 정리해보면, 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분열은 국민들을 ‘정치적 마비상태’에 이르게 했고, 파시즘은 뛰어난 대중장악 능력으로 마치 현재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선동하며 기반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2)2008년 말의 정치적 맥락
2009년의 과 의 신드롬을 논함에 앞서 크라카우어의 주장을 언급한 이유는, 이 작품들 역시 정치적 마비상태를 역설적으로 반영하는 작품이며 이러한 영화들의 성공적인 흥행은 곧 한국 사회의 파시즘적 징후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경제적 위길 인해 자신의 위치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 사회정치적인 문제들로 인한 정치 혐오증. 이러한 것들을 크라카우어가 표현한 20세기 초 독일의 대중들이 처한 상태와 똑같은 ‘정치적 마비상태’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2008년 말에서 2009년 초까지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주요적인 정치적 사건들과 이로 인해 국민들이 체화 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마비의식이 전제되어 있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2008년 말의 한국 사회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화재로 인한 숭례문의 전소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이어진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은 경제가 모든 정치적 요소들을 지배할 것을 알렸다. 현 정권에서는 계속해서 경제 살리기를 시도해왔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특히 미국 발 금융위기에 대한 미숙한 대처는 경제관리 능력의 부재를 드러냈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등은 국민들의 불만을 초래해 결국 촛불 시위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하지만 정부의 과격한 대응책으로 인해 촛불은 너무나 쉽게 꺼졌고, 조그마한 실질적 성과가 있긴 했지만 사회적 소통의 부재는 여전히 문제가 되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거둔 좋은 성적은 사회적 무기력감을 해소해줄 마취제에 지나지 않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어진 연예인들의 자살소식 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허무주의를 안겨주었다. 마지막으로, 2008년 12월은 소위 ‘MB악법’의 국회통과를 막기 위한 국회의사당의 점거 및 국회에서의 몸싸움이 가장 격렬했던 시기였다. 즉, 이 시기는 어느 때보다 대중들의 정치 혐오증이 높은 시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마비시기에 개봉한 과 의 어떠한 요소들이 신드롬을 일으킬 수 있던 걸까?
3. 분석: 삭제, 도구화, 억압
1)이 주인공의 아픔을 다루는 방법
30대 중반의 남현수와 22살의 미혼모 황정남, 그리고 그의 손자이자 그녀의 아들 황기동이 주인공인 이 영화는 코미디라는 장르를 걷어내고 순수한 내러티브만을 놓고 보면 굉장히 심각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삼대는 말 그대로 과속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의 황정남이 겪었을 아버지 없이 자라온 아픔, 미혼모로 살아가는 아픔, 어머니의 부재를 경험한 아픔. 이는 결코 쉬게 넘어갈 수 없는 상당히 무거운 주제들이다. 결국 이 영화는 황정남의 아픔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의 문제가 매우 중요게 부상할 수 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