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고 정당하게 사는 것

 1  의롭고 정당하게 사는 것-1
 2  의롭고 정당하게 사는 것-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의롭고 정당하게 사는 것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의롭고 정당하게 사는 것
주장을 펼치기에 앞서 의롭고 정당하다는 것에 대한 각각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의롭다는 것은 정의를 위한 의기가 있다는 뜻이고, 정당하다는 것은 이치에 맞아 올바르고 마땅하다는 뜻이다. 어렸을 때부터 의롭고 정당하게 사는 것을 기초로 배워왔으며, 당연히 의롭고 정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인식하여 왔다. 하지만, 의롭고 정당하다는 것이 사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개념임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신의 미래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요즘 같은 경쟁시대에서, ‘타인을 불행하게 하지만 자신이 편안해질 수 있다면?’이라고 했을 때 자신을 우선시하는 이기심이 점차 허용되어 지고 있다. 개인주의가 보편화됨으로써 자신을 기준으로 의로움과 정당함이 느슨하게 적용되어 지고 있는 것이다. 의로움과 정당함을 추구하여 주저하다가 보면 직장생활에서나 학교생활에서 어느 순간 동등한 위치에서 시작했던 사람이 저만큼 앞서가고 있거나 심지어는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도 같은 돈을 주고 똑같은 입장에서 자신이 불편을 감소해야 되는 현실에서 손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보다 손해가 되는 일은 하려고 하지 않으며 개인의 편리를 추구한다. 같은 맥락에서 의롭게, 정당하게 사는 것을 손해로 보고, 모두가 꺼려하게 되면 ‘고작 나 하나 정도’하는 개인의 생각이 결국 그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피폐하게 만드는 무서운 힘을 갖는다. 그렇게 되면 개인이 누리려던 편리함은 물거품이 돼버리고 그 존재 이유마저도 사라져 버린다. 사회 전체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나에게 해가 될 수 있을 지라도 의롭고 정당하게 살아가는 것은 결코 해가 아니며,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의로움과 정당함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볼 때, ‘라쇼몽’에서 노파가 죽은 여자 시체의 머리를 뽑고는 여자가 살아있을 때 잘못을 했었기 때문에 자신이 한 일이 이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인은 그러한 노파를 보고 자신도 살기위해 노파에게 강도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잘못을 저지른다. 하인과 노파 모두 강도짓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도 있었다. 조금 극단적인 설정이기는 했으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선택에 따라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하는 일은 충분히 많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잘못된 선택을 했어도 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과 변덕스러운 마음, 이상과 현실의 차이 앞에서 이런 애매한 경우를 만나게 된다. 이런 경우, 자신의 입장에 서서 자신만의 이유로 정당화하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의롭지 않은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인정받을 수 없다. 이 때, 의롭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접하는 다양한 매체나 경험을 통해서 정의되어지고 있다. 법이라는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기준과 양심이라는 보다 추상적인 기준을 가지고, 어떤 것이 의로운 선택인지를 판단할 때 적용해보도록 하자. 자신에게 작용하는 다른 욕망, 욕심은 없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또, 나에게 해가 되어도 의로움을 선택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신뢰와 보람을 먼저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의로움을 선택하면 ‘바보 같다’, ‘어리석다’라는 소리를 듣는 게 현실이다. 이에 연연하지 말고, 우리는 “착하고 정당한 일을 하면, 지금은 손해로 느껴져도 사회생활을 했을 때,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다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법이야.”하는 가르침을 새기며 살아가야 한다.
의롭고 정당하게 살면 손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의롭게 살아야 된다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이 퍼져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내 생각은 언제나 의롭고 정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렇게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 부당한 상황이 왔을 때 그 부당한 상황에 대한 불이익을 그 상황에 있는 당사자가 다 짊어진다는 뜻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설 라쇼몽의 일부를 보면 송장의 머리카락을 뽑는 노파와 그 노파에게 칼을 뽑고 노파의 말을 듣고 나서 노파의 옷을 뺏는 하인이 나온다. 이 중에서 의롭고 정당하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어떤 누구도 하인과 노파 둘다 의롭고 정당하게 산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상황은 2∼3년 동안 교토에는 지진이나 회오리바람, 화재나 기근 같은 재앙이 계속해서 일어난 상황이다. 이 상황 속에 ‘의롭고 정당하게 살아야 된다.’라는 것은 그냥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노파는 송장의 머리카락을 뽑아 가발을 만들어 돈을 벌어 생존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인은 주인집에서 해고되어 당장 살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살기위해 강도짓을 한 것이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후에는 이 둘을 ‘의롭지 못하다 정당하지 못하다.’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상황을 보자 그 상황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위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과연 이들이 의롭고 정당하게 살았으면 생존 할 수 있었을까?
위의 상황은 아니지만 지금 현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상황이 매우 좋아졌기 때문에 언제나 정당하게 또는 의롭게 살아야 할까? 살아가면서 언제나 그럴 필요는 없다. 그 상황에 맞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 환경에서 남으로 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가 위험할 때 혹은 빼앗길 위험에 처 할 때에는 의롭고 정당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언제나 의롭지 않고 정당하지 않게 살라는 것은 아니다. 일단 정당하고 의롭게 살되 어떠한 상황이 왔을 때 위에 말한 상황이라면 그렇지 않아도 된다. 과연 라쇼몽에 나왔던 노파와 하인이 자연재해가 2~3년 동안 일어나기 전 상황에서 의롭지 못하고 정당하지 못하게 살았을까? 소설의 일부에는 나오지 않지만 전 상황에서는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 것이다. ‘의롭고 정당하게 살자’라는 생각이 먼저 와야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처하였을 때 ‘내가 의롭고 정당하게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야 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언제나 의롭고 정당한 것이 아니다. 그 상황에 맞는 인식이다. 지금 의롭고 정당하게 살면 자신이 위험에 처한다. 아니면 이러면 나에게 엄청나게 감당하기 힘든 불이익이 온다. 라면 의롭고 정당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그 상황에 맞게 생각 할 수 있는 올바른 생각이다. 그 상황을 판단할 올바른 생각이 바탕이 된 어쩔 수 없는 의롭지 않고 정당하지 않는 행동은 타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 말이 모든 상황에 대한 행동을 이해시킬 수 없지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보고 타인이 공감할 수 있다면 의롭고 정당하지 못한 행동도 합리화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대사회에서는 언제나 의롭게 또는 정당하게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선 의롭지 않고 정당하지 않아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