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철학 아메리칸 뷰티 아메리칸 뷰티 감상평 아메리칸 뷰티 영화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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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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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메리칸 뷰티
한 직장에서 14년 동안 근무하고 있는 42살의 레스터 버냄은 부동산 일을 하고 있는 아내 캐롤린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 제시와 살고 있다. 그는 중산층 마을에서 살고 있고 집은 잘 가꾸어진 정원을 가지고 있으며 겉에서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는 회사에서는 언제 해고될지 몰라 전전긍긍해야 했으며 아내와 딸은 무기력한 그를 경멸한다. 아내는 경제적 능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속물이고 딸은 담배를 거침없이 피우는 불량한 십대이다. 그의 가족에게는 대화다운 대화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하루 중 가장 최고의 순간이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면서 마스터베이션 할 때이고 자신을 패배자로 여기는 모녀에게 위축되어 소심해진 가장 레스터 버냄에게 큰 변화가 생긴다. 그것은 딸 제시의 친구 안젤라를 만나면서부터이다.
치어리더 활동을 하고 있는 딸의 공연을 보기위해 아내 손에 억지로 끌려간 레스터는 나이에 비해 섹시한 외모를 가진 딸의 친구 안젤라를 보게 된다. 그의 시선이 치어를 하고 있는 딸에게서 안젤라에게로 옮겨가 계속 그녀를 좇고, 그녀가 옷의 가슴부분을 열어젖히는 상상을 하게 된다. 열려진 그녀의 가슴 속에서부터 새빨간 장미 꽃잎이 쏟아져 나오는 환상을 보면서 황홀해 하는 레스터, 그날부터 레스터는 딸의 친구인 안젤라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유명한 잡지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으로서 또는 아버지로서의 자신을 망각한다. 아침시간 샤워할 때에나 겨우 해소되는 그의 억압 되었던 성적본능이 안젤라를 만나면서부터 잠을 깨기 시작한다. 그의 본능은 더욱 거침이 없어져 안젤라가 딸의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접근한다. 딸의 수첩을 몰래 훔쳐보면서 안젤라에게 전화하고 밤에는 빨간 장미 꽃잎이 가득 담긴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안젤라를 상상한다. 상상 속에서 그는 안젤라와 육체적으로 접촉하고 그 상상이 현실이 되길 희망한다.
안젤라는 10대 소녀이다. 그녀에게 반한 레스터는 딸의 친구인 안젤라와의 관계를 원하게 되면서 가장으로서의 정체감에 퇴행을 보인다. 퇴행이란 과거에 지향했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며 발달의 이전단계로 되돌아감으로써 불안을 해소하고 무의식적 갈등을 회피함을 뜻한다. 레스터는 마치 20년 전, 청년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직장에 사표를 내고 구한 일은 너무나도 바랬던 ‘책임감 미니멈인’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였으며 70년대 몰고 다녔던 스포츠카를 구입하고 예전에 끊었던 대마초를 다시 피운다. 더 이상 그는 아내와 딸 앞에서 위축되지 않았으며 자신의 욕구대로 행동한다. 화가 날 때는 크게 소리도 지르고 접시를 깨기도 했으며 안젤라가 근육을 키우면 함께 잘 수도 있다는 말을 엿듣고는 그 때부터 근육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다.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그는 자신의 여태껏 그를 제어하던 사회적 체면이나 가정에서의 위치 등의 초자아, 즉 현실원칙을 거부하고 본능의 충족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그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자신을 생각하지 않았고 오로지 근육을 키워 안젤라와 당당하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하는 지극히 본능적이고 쾌락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안젤라와의 하룻밤을 꿈꾸던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본능대로 안젤라와 자려던 그는 예상외로 성관계가 처음이라는 안젤라의 말에 자신의 초자아를 되찾게 된다. 레스터의 상상 속에서 자신을 유혹하던 매력적인 요부는 사실 남자경험이 없는 순진한 10대 소녀에 불과 했던 것이다. 레스터의 초자아는 그의 성적본능을 제어하면서 그의 지위와 역할을 일깨워준다. 자신은 캐롤린의 남편이고 제시의 아버지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것, 그리고 앞에 누워있는 순진한 소녀는 딸의 친구라는 것을 말이다. 자신의 역할을 되찾게 된 그는 아버지의 위치에서 안젤라를 대하게 된다. 더 이상 그녀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딸처럼 여기면서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고 그 동안은 관심 밖 이었던 딸의 근황을 물어보면서 아버지로서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그는 세 가족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던 가족사진을 바라보며 자신의 진정한 행복이 아내, 딸과 더불어 아버지로서 가족의 일원이었을 때를 깨달으면서 자아를 되찾는다.
그의 가족 구성원들은 쾌락원칙에 의한 삶을 살고 있다. 오랫동안 아내의 외면으로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금욕생활을 한 그는 자신의 억제되어 있던 본능의 출구를 딸의 친구에게서 찾는다. 그는 아버지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딸의 친구를 꼬시기 위해 근육을 키웠으며 밤마다 안젤라와의 관계를 떠올리며 자위한다. 아내 캐롤린 또한 그녀의 본능이 오랫동안 억제되어 있었고 그녀는 본능은 그녀가 일하는 부동산 계통에서 성공한 능력 있는 한 남자를 대상으로 분출된다. 그녀 또한 아내와 어머니라는 자신의 위치를 잊고 그와의 관계에 탐닉하면서 자신의 본능충족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딸 제시는 솔직하고 제멋대로인 소녀로 자신의 부모를 경멸하여 거침없이 말대꾸를 하는 등 버릇없는 행동을 보인다.
레스터나 캐롤린, 딸 제시는 모두 지극히 본능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회적 지위나 체면, 가정에서의 역할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쾌락과 본능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자신의 본능대로 살아가는 삶이 다시 말해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이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주인공들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딸 제시의 “나도 규율이 필요한가봐. 난 번듯한 아빠를 원해. 내 친구나 넘보며 팬티에 사정하는 아빠말고. 누가 아빠를 없애버렸으면 좋겠어”라는 대사를 통해서 그녀가 무절제하고 거침없는 자신을 제어해줄 수 있는 초자아의 존재를 필요로 함을 말해준다. 레스터는 마지막 죽기 전에 아버지로서의 역할 즉, 초자아를 되찾으며 진정으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그의 마지막 대사 “내가 미쳤지. 이런 가족을 두고”는 현실원칙을 저버리고 쾌락을 좇던 그가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이 절대로 바람직할 수도, 행복을 보장하지도 않는 다는 사실 깨달았음을 시사한다. 그는 진정한 행복이 무절제한 본능이 현실원칙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프랭크는 레스터의 이웃에 사는 사람이다. 그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는 꼭 “해병대 대령 프랭크”라고 소개한다. 그는 언제나 신문을 보고 말세라며 사회, 정치에 대해 비판하고 옆집에 사는 동성애 커플을 매우 혐오한다. 프랭크는 매우 엄격하고 완고한 사람으로 아들 리키가 대마초를 했다고 하여 정신병원에 또 군사학교에 보낸 적이 있었다. 프랭크는 아들에게 절대 방문을 잠그지 말 것을 강요하며 숨 막힐 정도로 감시를 했고 6개월마다 한번씩 소변검사를 했다.
프랭크는 자신의 본능을 극도로 억압하는 사람이다. 그가 남에게 ‘해병대대령 프랭크’라고 소개하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아주 명예롭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적 규율이나 제도에 대하여 엄격하고 비판적인 반면 자신의 본능을 충족시키는 면에서는 간과한다. 그는 본능에 충실한 쾌락원칙에 의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매우 혐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은 초자아적인 인물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는 아들 리키에게, 인생에는 엄연한 규칙이 있으므로 반듯하게 살라고 가르치고 아버지의 권위에 억눌린 아들은 대부분 순종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의 동성애 커플을 혐오하는 말을 하는 아버지에게 리키는 그들을 이상한 잣대로 보지 말라는 말을 한다. 아버지가 그런 리키에게 화를 내자 리키는 아버지의 뜻은 모두 옳다는 식으로 넘기려 하고 이에 프랭크가 한 말은 “엄마가 애 달래듯이 말 하지마.”이다. 그는 자신 스스로를 초자아적인 인물로 설정해 놓은 뒤 그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들 리키가 레스터에게 대마초를 말아주고 있는 모습을 두 사람이 동성연애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잘못 보고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아들의 말을 믿지 않았고“게이가 되느니 차라리 나가서 뒤져라.”라고 외치며 내쫓았으며 떠나는 아들을 잡지 않는다. 그는 게이 아들보다는 사회적인 명예와 체면을 선택한 것이다.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본능이다. 프랭크의 부정은 그의 극단적인 초자아로 인해 억압되고 있다.
프랭크의 일상에서 자신의 욕구 충족과 관련된 일은 거의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는 매우 초자아적인 인물이었고 쾌락을 쫓는 본능적인 인간들을 혐오했다. 그러나 그의 본능이 출구를 찾았을 때는 억눌렸던 욕망이 한꺼번에 폭발하게 되었다. 그는 아들과 레스터가 함께 있는 장면을 창문을 통해 몰래 지켜보는 관음증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이 행동을 관음증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프랭크가 아들과 레스터를 훔쳐보면서 성적도착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일말의 쾌감을 느꼈으리라고 추측되기 때문이다. 물론 프랭크는 아들을 감시했다는 명분을 내세우겠지만 영화 후반에 동성연애자라고 오인한 레스터에게 찾아가 그에게 키스하려는 장면을 고려한다면 그는 그 장면을 훔쳐보며 성적인 쾌감을 느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