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닥터 이라부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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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닥터 이라부 감상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연극 감상평
원작이 있는 매체를 감상하러 갈 때는, 원작을 어떻게 각색했는지를 기대하게 된다. 원작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도출해내고, 다른 매체가 전달하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각색의 주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 소설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원작으로 하는 연극 는,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만족스러웠지만 각색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한 아쉬운 연극이었다.
버라이어티 메디컬 쇼! 시종일관 손가락을 위로 치켜들고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며 ‘참여 형 연극’을 표방한 이 연극은, 가볍게 즐기자 하면 맘껏 즐길 수 있을 만큼 유쾌하고 나름의 의미도 지닌 연극이었다. 지금까지 연극이 유지해 온 ‘제 4의 벽’이라는 관습을 허물고, 배우들은 스스럼없이 관객들에게 다가와 마이크를 들이밀고 무대로 이끌어내었다. 푸짐한 인상의 어딘가 얼빠진 닥터 ‘이라부’와 시종일관 사람들을 아래로 노려보며 소리를 질러대는 섹시한 간호사 ‘마유미’. 이 두 ‘유쾌한’ 캐릭터가 세 명의 환자들과 함께 연극을 이끌어나갔다. 극은 각 환자들이 지닌 문제를 보여주고, 그 문제를 이라부가 특유의 방식으로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반복하여 보여주게 된다.
선단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조폭 행동대장,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로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여자,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갇혀 음경 강직증에 걸린 남자. 이라부는 전혀 진지하지 않은 태도로 이들을 맞이하며 강제로 비타민 주사를 맞히고 커피를 권한다. 환자들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어느새 이라부의 치료 방식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통해 문제를 극복해나가게 된다. 그 치료의 기반은 자기이해와 인정에 있다는 점이 소설을 읽을 때도 그랬고 연극을 볼 때도 참 마음에 들었다.
연극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간 중간 관객들을 참여시킨다. 때로는 그들의 환자로, 학생으로, 방청객으로, 연극의 관객으로. 이런 방식은 신선하게 와 닿기도 하고 이 연극의 재미에 한 몫을 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들이 관객을 초대하는 방식은 너무 억지스러웠다. 초반에는 얼떨결에 함께하게 될지 몰라도, 반복적으로 관객을 이끌어내려는 시도는 오히려 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고 관객들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적당한 거리두기도, 온전히 함께하기도 아닌 어정쩡한 거리감이 느껴져 어떤 위치에서 극을 바라보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극중 인물들이 제멋대로 관객에게 다가섰다가 제멋대로 멀어지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너무 설명적이라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었는데, 연극이 갈등을 중심으로 클라이막스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 나가는 장르인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연극은 그런 관습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었다. 배우들은 내면의 문제를 깨닫고 그것을 극복하는 순간을 전부 말로 설명한다. 자신이 지닌 문제 또한 독백의 반복으로 설명될 뿐이다. 개인이 가진 내면적 갈등을 이라부가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갈등과 해소의 반복이라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연극이 소설과 같은 단순 서사와는 다른 장르임에도 이 연극은 원작 소설을 거의 그대로 옮겨 오는 바람에 연극적 미학이 느껴지기 이전에 설명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 연극을 보면서 가장 신선하다고 느꼈던 부분은 무대의 활용이었다. 소극장이니만큼 좁은 무대 공간 위에서 다양하게 바뀌는 무대를 암전이나 커튼을 이용하지 않고 바퀴 달린 무대 장치들을 이동하여 바꿔나갔는데, 그것이 너무 억지스럽거나 산만하지 않고 경쾌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맞춰졌다는 느낌이었다. 몇 안 되는 장치들을 이용해 많은 공간을 연출해냈다는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다만 연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생각해 볼 때, 무대장치나 조명, 음향과 같은 오브제들이 전혀 효과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재미있고 화려하게 꾸몄지만, 그것이 연극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거나 암시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대인들 모두가 정신병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는 말처럼, 이라부는 연극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관객 모두를 환자 취급한다. 좌석에는 병동 이름이 붙어 있고, 돌아가는 순간까지 곧 완쾌될 것이라 관객들을 응원한다. 그것이 불쾌하거나 언짢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실제로 우리 모두 마음에 병과 같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고, 연극에 등장하는 환자들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라부가 치료하는 과정이 어떤 약물이나 전문적인 치료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닌, 병에 걸려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님을,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며 관객들 또한 일종의 위로를 받게 된다. 원작 소설부터가 튀는 감성으로 읽는 이들에게 신선한 위로가 되었다면, 연극은 그 위로의 방식을 보다 구체화하여 유쾌하게 전달했다 할 수 있겠다. 다만 앞서 말했듯, 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하여 새로움을 주기보다 원작을 그대로 옮겨온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실망스럽기도 했다.
분석을 위해 날을 세우고 연극을 보다보면 그 재미가 반감되는 것을 가끔 느낀다. 즐기기 이전에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연극은 그런 것들을 제쳐두고 편한 마음으로 재밌게 볼 수 있었다. 각색의 아쉬움이고 뭐고, 이라부와 마유미가 마이크를 앞에 들이대며 닥치고 비타민 주사나 맞으라며 버라이어티 메디컬 쇼!를 외치게 만드는데, 얼떨결에 함께 손을 들며 일단 그냥 즐길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