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동화-청담동 엘리스를 보고

 1  어른들을 위한 동화-청담동 엘리스를 보고-1
 2  어른들을 위한 동화-청담동 엘리스를 보고-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어른들을 위한 동화-청담동 엘리스를 보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어른들을 위한 동화
- ‘청담동 엘리스’를 보고
이번 강의를 통해 볼 수 있었던 ‘청담동 엘리스’라는 드라마는 저에게 재미와 함께 여러 가지 화두를 던져주었습니다. 드라마를 볼 때 제목에서 연상시키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의 관계와 교수님께서 강의 계획서에서 명시해주신 브루디외의 “구별 짓기”를 토대로 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저에게 가장 큰 고민과 충격을 안겨준 “성공을 위한 기준”과 “진정한 사랑”, 이 두 가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먼저 “성공의 조건”에 대해 느낀 점들을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드라마 속에는 두 가지 유형의 성공기준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학력 자본만으로 모든 사회자본과 문화자본의 결핍을 메우고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조부모나 부모님의 시대에 많이 볼 수 있었던 성공기준입니다. 물론 지금도 학력 자본을 통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수요가 예전에 비하면 견줄 바 없이 적은 것이 현재 사회의 모습입니다. 하여 더 높은 지위를 얻고자 더 높은 학력을 추구하지만 그 결과 학력 인플레이션 현상만을 불러왔고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 청년실업자들만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다른 한 가지는 부요한 경제자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회자본과 문화자본을 이용한 성공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경제자본이 뛰어나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경제자본만 있다고 해결할 수 없는 습관화된 취향 곧, ‘아비투스’를 통해 자연스레 취득되는 개인의 자본을 강조하는 주장입니다. 이는 학습을 통해 성취되는 수준과는 달리 체득되는 것이기에 다른 이들과 구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전에 드라마 속 팀장이 여주인공에게 입사시험에서 꼴찌를 한 이유가 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 대답에 대한 근거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유학”으로 대변할 수 있는 “경제자본”의 유무만으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닌 그런 경제자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아비투스가 주인공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꼴찌를 했던 것입니다. 팀장은 입사시험 때 그녀가 가진 안목의 수준은 ‘대중적 취향’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았고 그로 인해 그녀는 주된 고객들의 ‘순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없으리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통해 저를 비롯한 많은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성공을 위한 조건’이 어쩌면 우리들끼리의 조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에 ‘이중시장이론’도 생각이 나면서 앞에서 이야기했던 ‘성공의 조건’들은 둘 다 맞는 내용이었지만 인도해주는 ‘시장’은 서로 다른 곳이기에 개인의 성공에 있어서 그 한계가 정해져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제가 느낀 바를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드라마에서는 크게 두 가지 모습의 사랑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차승조’로 대표되는 사랑의 모습으로 사람 그 자체를 사랑해야지 그 외의 부수적인 것들을 보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유형은 자신 그 자체만을 보고 사랑해주기를 바라는데 굉장히 순수한 사랑의 모습을 꿈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유형의 사랑은 ‘서윤주’로 대표되는 유형으로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서 그 사람 차제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는 부수적인 것들을 중시여깁니다. 이들에게 있어 사랑이란 그 사람 자체만으로는 이루이지지 않는 모습이고 물질적인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에 다른 더 큰 경제자본을 가진 이가 나타나면 이전의 사랑을 떠나 다른 사랑으로 옮겨갈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의 기준을 경제자본을 척도로 하여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사랑이란 일종의 비즈니스와도 같은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유형들을 보면서 제가 생각하게 된 사랑을 이야기해본다면 이전에는 ‘서윤주’의 사랑은 비난하고 ‘차승조’의 사랑만이 진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랑을 꿈꾸고 기다려왔지만 이번 수업을 통해서 과연 ‘그 사람 자체’의 범주를 어느 정도로 정해야 할 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범주를 정하지 못한다면 저의 생각은 그저 어수룩하고 유치한 사고에 불과할 뿐 상상하던 순수함과는 거리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앞의 두 유형을 포함한 다양한 모습들을 가진 거대한 집합체라는 생각입니다. 사람들 개개인이 가진 사랑의 모습은 모두 다를 것이나 그것들은 모두 사랑일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