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불 속 소설과 영화를 본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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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덤불 속’ 소설과 영화를 본 감상문
‘덤불 속’이라는 글은 누구도 속을 들여다 보지 못하는 덤불 속에서 일어난 한 무사의 죽음에 연관된 사람들의 진술과 자백으로만 이루어진 소설이다. 사건 당시 덤불 속에 있었던 인물은 세명으로 다조마루라는 도적과 무사, 무사의 아내이다. 이 세명은 모두 무사를 죽인 범인이 본인이라고 주장한다. 무사는 무당의 입을 빌려 자결하였다고 밝힌다. 세 사람은 모두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이 세 사람 모두 본인들의 진술과 자백이 매우 자기중심적이라는 공통점이 숨어있다. 모두 본인이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명확하고 자결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명확하다. 다조마루는 여자를 얻기 위한 정정당당한 시합으로 죽었고 의도적인 살인이 아니라고 주장을 한다. 여자는 다조마루에게 강간을 당한 충격과 남편의 눈빛으로 인한 수치심에 남편을 죽였다고 자백한다. 무사는 아내가 다조마루를 선택한 것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해 자결을 했다고 말한다. 모두 본인이 죽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자신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누구의 말도 믿지 못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덤불 속 사건을 바탕으로 작가는 인간의 내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진실은 내가 그렇다고 생각 하거나 다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한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덤불 속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세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이기적으로 본인에게 유리하게 꾸며 사실이기를 바라면서 진술하게 해서 인간의 이기적이고 자기를 보호하고자하는 욕망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덤불 속’이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고 더 확고해졌다. 소설에서는 나무꾼과 스님의 진술은 그닥 중요시 되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나무꾼의 진술마저도 사건에 크게 연루되고 싶지 않은 나무꾼의 이기적인 거짓말이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설과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일부러 이기적이게 남과 나를 속여오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남을 속이기 위해서는 나도 속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은 말을 조금만 바꿔서 작은 일도 크게 만들고 큰일도 작게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작가의 두 작품 ‘덤불 속’, ‘나생문’을 각색하여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영화 라쇼몽은 몇 가지 소재에 대하여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덤불 속이라는 소재는 먼저 보통 사람들은 접근하지 않는 은밀한 곳이며 그로인해 은폐되고 왜곡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속물, 이기심을 확인하는 곳이라는 것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덤불 속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한 사내의 죽음에 대하여 살인범이 3명이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사내(피해자), 아내, 산적의 각각의 증언은 모두 달라 해당 사건을 미궁 속에 빠지게 하고 영화감독이 생각한 결말대로의 결과에 의하면 결국 모두가 덤불 속에서 일어난 일을 자신의 자존심, 안전, 권위를 위해 이기적으로 왜곡한 것이 된다. 덤불 속은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합리화하기 위해 왜곡하기 좋은 공간인 것이다. 비록 원작 ‘덤불 속’에서는 나무꾼의 진실증언 없이 열린 결말을 통해 많은 독자들을 헷갈리게 만들지만 원작과 영화 모두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생문이라는 소재는 처음엔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곳으로 쓰이고 말미에는 나생문에 버려진 아기를 가지고 전개되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 확인과 그 이기심에 대한 반성을 의미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 덤불 속에서 일어난 진상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뒤 나생문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것을 본 행인은 아기는 버려둔 채 붙어있던 돈이 될만한 옷가지들만 챙겨가려하고 나무꾼은 행인을 말린다. 오히려 행인은 나무꾼이 덤불속에 일어난 일에 대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단도) 정확히 증언하지 않은 나무꾼을 나무라며 자신의 행위에 부끄러움이 없다면서 떠나게 된다. 이 점이 인간의 이기심 확인 구간이 된다. 그리고 나무꾼은 아기를 거두게 되는데 이 점에서 이기심에 대한 반성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원작 ‘나생문’ 의 살기 위해 하는 행동은 죄악이 아니며 따라서 죄책감같은건 없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는 다름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신의 안전, 권위, 자존심을 위해 거짓을 일삼는 인간의 이기적인 행위를 비판하며 그로 인해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여러사건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마지막에 나무꾼이 아기를 거두어 가는 장면을 통해 반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빠른 95년생으로서 남들보다 덜 살아본 나지만 이 작품은 본 작품 중 일생에서 제일 충격을 주었으며 흥미로운 내용이었고 이 후기를 통하여 재정리를 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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