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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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에 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만리장성
만 리 장 성
1. 만리장성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축조물인 중국의 만리장성은 동쪽의 산해관(山海關)으로부터 서북쪽의 가욕관(嘉關)에 이르는 길이 2,700km에 이르는 장성 직선거리로는 2,700km이나 산의 굴곡부와 만리장성에서 뻗어나온 성곽들을 모두 포함하면 성곽의 총길이는 약 6,400km에 이른다고 한다.
이다. 이는 대대로 중화민족과 유목민들의 심리적인 경계선이자 농업과 유목의 경계선 역할을 하였던 구조물이였다.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진(秦)의 시황제가 흉노족을 막기 위해 쌓았고, 명나라대에 이르러 현재의 완성된 모습을 갖추었다라는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 발표문에서는 만리장성의 시대별 역할과 모습, 그리고 축조법에 대하여 간단하게나마 알아보고자 한다.
2. 만리장성의 시대별 변화
만리장성의 기원은 춘추시대의 제(齊)나라에서 기원이 되어 북방유목민족과 영토를 접하고 있던 연(燕)조(趙)위(魏)등 북방의 경계가 필요한 나라들에 의해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춘추전국시대를 진의 시황제가 통일한 이후인 BC 214년에 그동안 각 나라들이 구축했던 성들을 증개축하여 만리장성을 만들어 흉노(匈奴)에 대한 방어선을 이룩하였다. 한(漢)대에 이르러 한무제(武帝)는 BC 2세기경에 영토의 서쪽 끝인 둔황 바깥쪽의 옥문관(玉門關)까지 장성을 연장하였다. 진한시대의 장성은 현재의 장성보다 훨씬 북쪽에 뻗어 있었는데, 그것이 현재의 위치로 남하한 것은 거란과 돌궐 등의 유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5C 북위(北魏)는 장성을 보강하고, 북제(北齊)는 6C중엽에 북서쪽의 거용관(居庸關)에서 발해만의 산해관(山海關)에 이르는 장성을 축조하였다. 수나라에서도 돌궐과 거란을 방비하기 위하여 오르도스 남변에 장성을 구축했다.
당대에 이르러서는 장성의 훨씬 북쪽까지 그 판도를 넓혔기 때문에 방어선으로서의 장성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이후 5대 10국 이후에는 장성지대가 북방유목민족의 점령하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방치되었다.
장성이 현재의 산해관에서 가욕관에 이르는 모습을 갖춘 것은 명대에 들어와서였는데 이는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15세기 중엽에서 16C초엽에 이르기까지 장성은 계속해서 축성되었으며, 현재의 모습과 같은 규모와 모양을 가지게 되었지만, 청대에 이르러서는 장성은 청의 영토 내부에 들어와 있게 됨으로써 군사적인 의의를 상실하고, 단지 중국 본토와 유목민족이 사는 지역으로 구분하는 정치적행정적인 경계선에 불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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