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 은혜를 아는 사람 요한복음 12장 1절-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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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설교문 - 은혜를 아는 사람 요한복음 12장 1절-8절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하나님말씀: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요한복음 12장 1절~8절).
제목: 은혜를 아는 사람
사람이란 자기가 속한 환경에 자신도 모르게 적응해갑니다. 예를 들면, 서울에 사는 사람은 서울의 공기에 적응이 되어 오염된 것을 모르고 삽니다. 하지만 뉴질랜드같이 청정지역에서 살다가 온 사람은 가슴이 답답하다고 합니다. 공기가 안 좋다고 합니다.
또 다른 예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국민이 얼마나 경직되어있는지를 모릅니다. 그렇지만 친절이 몸에 배어있는 다른 나라 사람에게는 한국 사람은 딱딱하고 무서운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답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이 열성적이어서 새벽기도회, 철야기도회를 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대단한 신앙가들이라고 스스로 자랑했지만, 한때 외국 기독교인들로부터 한국의 크리스천은 기복신앙이기 때문에 평가에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봐도 이 나라의 대형교회 목회자가 사이비성이 있다하여 경계의 대상이 된 일은 한두 건이 아니며 지금도 진리가 왜곡되고 있는 것이 이 땅의 기독교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판의 안목만을 키울 수는 없으며 때문에 저는 캄캄한 암흑시대에 광명한 빛이 임했고, 그 빛 가운데로 또 다른 작은 빛이 다가가서 빛을 발하여 온 기독교인들에게 도전과 사명을 일깨워준 사건을 소개하려고 단위에 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시기 전에 휴식과 안정을 취하시고 니산 월 제8일에 예루살렘 근교의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의 집을 찾으셨습니다. 니산 월이란 태양력으로 3월~4월을 말하는 것이고 제8일은 현재의 금요일입니다.
‘거기’란 문둥이 시몬의 집을 가리키고 문둥이 시몬은 아마 별명이었을 것입니다. 이 말은 그가 지금은 문둥이가 아닐 것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만약 그가 지금 문둥이라면 유대의 결례법상 이 집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식사를 한 것으로 보아 그는 지금 완치된 자요, 아마 일전에 예수님으로부터 문둥병 치유를 받은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 절과 본 절에서 나사로가 계속적으로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추측하건대 이 잔치는 마리아의 오빠인 나사로를 예수님께서 다시 살려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마련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아마도 이 잔치를 마련한 주체는 나사로의 소생을 목격한 동리 사람들이거나 나사로와 마르다 자매로 짐작됩니다.
이 마리아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사건은 사복음서가 모두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황적 배경이나 내용으로 보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기사는 본문의 기사와 동일한 사건으로 보여 지며 누가복음의 기사는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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