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 -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문제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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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
1.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란?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 2년(1869년) 6월 29일 메이지 천황에 의해 건립되어 동경초혼사로 불렸으나 메이지 12년(1879년) 야스쿠니 신사로 개명되어 오늘 날까지 야스쿠니 신사로 불리고 있다.
1853년 개항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제2차 세계대전 등 일본이 벌인 주요 전쟁에서 숨진 약 245만명을 신격화 해서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내부에는 다른 신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시설이 있는데 경내 오른쪽에 있는 유슈칸(야스쿠니회관 혹은 보물유품관) 이다. 유슈칸에는 야스쿠니신사에 봉납된 각종 보물들을 비롯하여, 과거 메이지 천황군이 막부군에게 탈취한 전리품, 동경초혼사 관계 자료,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도검 총포류, 기타 전쟁 관련 유품 5만 5천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메이지 육해군 창설의 최대 공훈자인 오무라 마스지로를 기념하기 위한 동상이 1892년에 동경 최초로 세워져있으며 지금까지도 야스쿠니 신사의 명물 중 하나로 유명하다.
유슈칸과 오무라 마스지로의 동상의 존재만으로도 야스쿠니 신사가 다른 신사들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역사적으로도 일본 군국주의 및 천황제 국가신도 체제와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2.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문제되는 이유
Ⅰ. A급 전범 합사 문제
야스쿠니 신사에는 1948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사형당한 태평양 전쟁 주범 도조 히데키를 포함한 A급 전범 14명이 1978년 10월에 비공개 합사하여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아 여러 국가들의 반발을 샀으며 이는 정교 분리를 규정한 헌법에 위반 된다고 지적하여 일본 내에서도 참배 중단과 분사를 요구했으나 영새부의 기재 말소 불가와 국회에서 결정된 전몰자 유족에 대한 원호를 따랐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Ⅱ. 한국인 합사 문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약 245만명 중에는 한국인 약 2만 1천명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1947년 이후 37차례에 걸쳐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는데 일제 강점기 당시 강제 징용되어 전쟁에 끌려가 혹사당했고 전후 유족들은 이들의 전사 통지도 받지 못하고 유골 또한 반환 받지 못했으며 강제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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