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폭포수 - 잔느 귀용의 침묵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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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혼의 폭포수 - 잔느 귀용의 침묵기도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영혼의 폭포수
-잔느 귀용의 침묵기도-
Ⅰ. 서론
1. 어느 사이에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성’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시대마다 유행하는 단어와 많이들 회자되는 학술적 용어들을 통해 당대의 신학적 조류와 신앙의 색깔을 가늠할 수 있기도 하다. 요즈음에는 아무래도 ‘영성’이라는 키워드가 우리 신앙인들에게 화두가 되었고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영성’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다양한 의견들과 수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짧지만 포괄적으로 풀이해보면 ‘영성’이란 ‘하나님과의 관계 및 그로 인해 발생하는 타인들과의 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영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쓰인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 시대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 및 타인들과의 관계가 화두로 되어가고 있다는 실정을 나타낸다.
2. 이러한 ‘영성’을 올바로 세워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침묵기도’이다. 영성훈련의 한 방편으로 나아가 신앙생활의 근본적 토대로 ‘침묵기도’의 중요성 또한 조금씩 인식되어 가고 있다. ‘영성’만큼 큰 관심을 끌고 있지는 않지만 ‘침묵기도’에 대한 관심도 의미 있게 확산되고 있다고 본다. 이제 ‘침묵기도’란 무엇이며, 그 역사적 전통이 어떠했는지 간략히 정리하고자 한다. 특히 종교개혁의 시대를 거쳐, 유럽의 봉건체제가 쇠퇴해 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준비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한 여인의 ‘침묵기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하나님께로 이끌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쟌느 귀용의 삶은 그녀의 특별한 기도로 특징지어질 뿐만 아니라 그녀의 삶 자체를 통하여 실현된 온전한 ‘침묵기도’가 과연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그녀의 기도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고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침묵기도 및 그 전통
1. ‘침묵기도’란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기도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이끄시는 깊은 차원의 대화이다. 이러한 기도를 전통적으로 ‘관상기도’라고 불렀다. 관상기도는 우리의 전 존재를 사고, 언어, 정서를 넘어 하나님께 여는 것이다. 토마스 키팅, 『센터링 침묵 기도』 권희순 역 (서울: 카톨릭 출판사, 2006), 7.
가톨릭교회에서는 이 기도를 ‘향심기도’ 혹은 ‘구심기도’로 번역하기도 하며 개신교 일부에서는 ‘집중기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2. 침묵기도는 긴장 해소 훈련이 결코 아니다. 휴식과 이완은 다지 부수적인 현상일 뿐이다. 또한 침묵기도는 아무나 받을 수 없는 그런 은사가 아니다. 누구라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기도이다. 또한 침묵기도는 초감각적, 초심리적 현상(투시, 유체이탈, 공중부양 등등)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정상적인 기도의 방법이다. 침묵기도의 핵심은 ‘순수한 믿음’이다. Ibid., 29.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며 바로 그분이 침묵기도의 원천이기도 하다.
3. 헬라어 구약성서는 히브리어 ‘다아트’() 를 번역하면서 ‘그노시스’(γνσι) 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는 전인격과 관련된 깊은 지식을 암시하는 단어이다. 한편 사도 바울도 그의 서신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언급하면서 ‘그노시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초기교회의 교부들,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오리겐, 니사의 그레고리는 신플라톤 학파의 철학 용어인 테오리아(theoria)를 빌려 와서 히브리어 ‘다아트’를 대신하였다. 이제 테오리아는 라틴어인 컨템플라시오(contemplatio, 관상)로 번역되어 기독교 전통 속에서 전해 내려오면서 더 확장된 의미를 가진 용어가 되었던 것이다. Ibid., 40.
4. 6세기 말경 대 그레고리는 관상을 ‘사랑으로 충만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라고 설명하였다. 한편 초대 기독교 시대로부터 공인된 기도의 방법으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가 있었다. 이 기도는 묵상(meditatio)과 정감적 기도(oratio)와 관상(contemplatio)로 이루어졌으며 세 단계가 뚜렷한 경계 없이 평신도와 수사들에게 권장되고 있었다. 그러나 12세기경 많은 신학적 학파들이 형성되면서 렉시오 디비나는 그 단계들의 분리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즉 묵상과 정감적 기도와 관상이 따로 따로 실천되었으며 사람들은 우선 묵상과 정감적 기도에 치중하게 되었다. 관상은 영적 수련의 궁극적 목표로 남아 있었지만 차츰 사람들의 인식에서 잊혀 가게 되었다. 16세기에 이르러서는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의 물결들로 인해 기독교 관상의 전통은 사라져 가게 되었고 신비주의와 결합된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산되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1574년 스페인 전 지역의 수도회에 보낸 지침서에서 정감적 기도와 관상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이냐시오의 『영성수련』으로 관상기도의 전통은 명맥을 이어갔으나 시대적 상황은 급박하게 진행되었으며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종교 세력과도 결탁한 정치세력은 관상기도의 부정적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일련의 사건들(얀센주의 등)로 인해 더더욱 관상기도에 치명적인 압제를 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잔느 귀용은 전혀 의도치 않게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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