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마산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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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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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경상남도 마산시 소개
1,역사와연혁
고대
- 청동기시대
- 초기철기시대 유적
신라
- 676 문무왕 16년, 골포현이 되고 굴자군 (지금의 창원)에 속함
- 757 신라 경덕왕 16년, 굴자군이 의안군으로 ,골포현은 합포현으로 개칭됨.
고려
- 982 성종1년, 조창(석두창)설치
- 1018 현종9년, 의안군과 합포현이 금주(지금의 김해)에 소속됨
- 1274 원종15년, 합포에 정동행성을 설치, 여몽연합군 일본 원정
- 1281 충렬왕7년, 여몽연합군 2차 일본원정
- 1282 충렬왕8년, 의안은 의창으로, 합포는 회원으로 개칭, 각각 현령을 둠
조선
- 1408 태종8년, 의창현·회원현을 창원부로 통합
- 1415 태종15년, 창원도호부로 개칭
- 1592 선조25년, 이순신 장군의 합포해전
- 1601 선조34년, 창원대도호부로 승격
- 1603 선조36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영을 진주로 이전
- 1661 현종2년, 창원현으로 강등
- 1670 현종11년, 창원대도호부로 환원
- 1760 영조36년, 조창(마산창)설치
- 1899 마산포개항, 창원감리서 개설, 각국 영사관부지및 외국조계지 확정
- 1905 마산·삼랑진간 군용철도 개통
- 1909 사립 창신학교 설립
- 1911 진해군항 설치로 마산항 폐쇄
- 1914 마산부 설치
- 1919 3·1 독립운동, 삼진독립의거
- 1941 결핵요양원 설립
대한민국
- 1949 마산시로 개칭, 마산항 재개항
- 1950 6·25전쟁으로 낙동강 전선의 병참기지 역할
- 1956 마산화력발전소 완공, 발전 시작
- 1960 3·15 마산의거
- 1970 마산수출자유지역 설치
- 1973 남해고속도로 개통
- 1973 창원기계공업기지 설정
- 1976 가포해수욕장 폐쇄
- 1977 구마고속도로 개통, 통합 마산역 완공, 개통
- 1979 부마민주항쟁
- 1980 창원시 분리
- 1989 합포·회원출장소 설치
- 1990 합포구와 회원구 승격 설치
- 1991 마산시의회 재구성, 새 시청사 준공
- 1995 창원군 5개 면을 통합한 통합 마산시 출범
- 1995 민선 자치시대 마산 출범
- 2000.12.31 구청폐지
2.지명유래
마산은 고사에 의하면 삼한시대에는 변한의 일부라는 설이 있으나 삼한에 속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신라 35대 경덕왕 이전에는 마산항을 骨浦, 마산을 骨浦縣이라 불러 屈自郡에 영속시켰는데 골포현 당시의 성지는 지금도 시내 환주산(추산동 정수장 부근)에 그 유적이 남아 있다.
신라 경덕왕이 즉위하여 전국의 지명을 고치고 행정구역을 새로이 정할 때 굴자군은 義安郡으로 하고 골포를 合浦 또는 合浦懸으로 고쳐서 의안군에 영속시켰으며 동남도병마절도사를 두었다.
그 후 고려 때에 즉, 1274년 25대 충렬왕시대 원나라와 함께 일본을 정벌하려던 동정군의 근거지가 되고 나서 의안을 義昌縣으로, 합포현을 會原縣으로 독립시켰으며 정동행성을 현 합성동에 축성하여 설치하고 창원포(현 창원시)에 의창현을 분치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3대 태종 때(1400년)에 의창현과 회원현을 합쳐서 昌原郡을 설치하고 도호부를 두었다. 부성은 고려 정동영이 자리 잡고 있던 현재의 합성동에 있었으나 그 후 11대 중종 때 부성을 오늘날의 창원시 의창동으로 옮겼다.
오늘의 마산포가 출현된 것은 조선중기 이후의 일이다. 18대 현종 4년 1663년 대동법이 시행됨에 따라 낙동강 하류 유역 13군의 조공미를 서울로 조운하는 격납고인 조창(현 남성동 제일은행 지점자리)이 설치됨으로써 공관과 민가가 순식간에 형성되었고, 그 결과 이 일대에 중성리·동성리·오산리·서성리·성산리·성호리 등 6개리가 형성되면서 오늘날의 마산의 기반이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종래의 마산포는 昌原港 또는 舊江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편 조창 설치 이후 공관과 민가가 번성을 이루어 山湖浦 (일명 午山津이라 불리웠다 함) 그 당시 한때 전염병이 만연되어 희생이 많았던 관계로 이 재해를 면하기 위하여 午山의 午자는 馬자와 글자는 다르나 뜻은 같다 하여 마산이라 개칭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馬山의 유래라 하기도 한다.
또한 마산이란 명칭은 고려시대에는 보이지 않고 『신증 동국여지승람』창원도호부조에 합포와 아울러 마산포란 명칭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현 마산시 지명이 여기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하기도 한다. 그후 조선말 광무 3년인 1899년 5월 1일 마산포는 개항장으로 발족되고 창원감리서가 설치되어 외교사무와 지방행정을 관장하고 또한 각국 거류지제가 설치됨에 따라 일본 영사관이 설치되었다. 1906년 영사관은 이사청으로 개편되고 1914년 부제실시로 마산부가 되었으며 1945년 8월 15일 조국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 6월 29일 개항장으로 지정되고 그해 8월15일 부를 시로 개편한 이래 오늘의 마산시가 되었다.
3.마산의 어제와 오늘
4.브랜드 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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