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정신분석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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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회과학 정신분석모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정신분석 모델
(Psychoanalysis Model)
정신분석 모델
(Psychoanalysis Model)
Ⅰ. 정신분석이론의 발생배경
1. 역사적 배경
2. 과학적 토대
3. 대표학자
1p
4. 정신에너지와 본능
5. 방어기제
1)방어기제의 개념
2)방어기제의 유형
8p
8p
Ⅳ. 정신분석이론의 실천 / 적용
1. 정신분석 모델의 치료
2. 정신분석 모델의 적용 / 발전
9p
Ⅱ. 정신분석이론의 인간관과
기본가정
2p
Ⅲ. 정신분석이론의 주요 개념
1. 지형학적 모델(인간의 정신)
1)의식(conscious)
2)전의식(preconscious)
3)무의식(unconscious)
2. 구조적 모델(성격의 구조)
1)본능(id)
2)자아(ego)
3)초자아(superego)
3. 심리성적 발달단계
(Libido의 변환 발달)
1)기본원칙 / 용어
2)발달단계
①구강기
②항문기
③남근기
④잠복기
⑤생식기
3p
3p
4p
6p
Ⅴ. 사회복지 실천에의 공헌 및
한계
10p
VI. 참고문헌

정신분석과 함께 배우는 그리스신화
14p
Ⅰ. 정신분석이론의 발생배경
1. 역사적 배경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성격과 인간 내부 감정의 이해에 관련된 많은 이론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Freud의 정신분석이론이다. 정신분석은 프로이트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신경과를 개업하고 그 당시로는 최신 치료법으로 알려진 전기 생리적 요법을 히스테리 환자에 적용하여 보았으나 별 효과가 없었으며, 환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경험이 히스테리의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런 기억을 회상해내는 것이 증상의 소멸에 결정적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파리의 Charcot에게 최면술을 배워 정화법을 사용하였으며 그 후에 최면을 걸지 않은 상태에서 회상하게 하는 방법인 자유연상법을 찾게 된다. 자유연상법으로 동기들이 행동을 유발하는 과정을 설명하려는 시도인 무의식의 세계를 연구하여 정신분석이론을 수립하게 된다.
2. 정신분석이론의 과학적 토대
초기에 프로이드는 관념적 세계에 대한 정신분석의 영향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정신분석의 발견을 그가 출생한 년도(1856)에 출판되었던 「종의 기원」의 다윈이론과 코페르니쿠스이론에 비유하였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은 우리의 세계가 창조의 중심이 아니고 단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여러 혹성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보여주었다. 이와 비슷하게 진화론은 생물학적으로 얘기할 때, 우리 인간이 본연의 위치에 있게 하여 주었다.
정신분석학은 진화론과 태양계의 발견과 마찬가지로 그 견해의 타당성을 인정받기 전까지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신념이 받아들여지고 사람들이 그 신념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기 이전에 불쾌한 감정과 변화에 대한 불안이 먼저 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신분석이론에 대한 강한 거부반응이 있었던 것이다.
3. 정신분석이론의 대표학자
1. 프로이드(Freud, Sigmund)
1856. 5. 6 오스트리아 모라비아(현재 체코) 프라이베르크 출생으로 빈 대학 의학부 졸업 후 얼마 동안 뇌의 해부학적 연구, 코카인의 마취작용 연구 등에 종사하였다. 1885년 파리의 사르베토리에르 정신병원에서 샤르코의 지도 아래 히스테리환자를 관찰하였고, 1889년 여름에는 낭시(프랑스)의 베르넴과 레보 밑에서 최면술을 보게 되어, 인간의 마음에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과정, 즉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굳게 믿게 되었다.
이보다 앞서 J.브로이어는 히스테리환자에게 최면술을 걸어 잊혀져 가는 마음의 상처(심적 외상)를 상기시키면 히스테리가 치유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와 공동으로 그 치유의 방법을 연구, 1893년 카타르시스(Katharsis)법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이 치유법에 결함이 있음을 깨닫고 최면술 대신 자유연상법을 사용하여 히스테리를 치료하고, 1896년 이 치료법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말은 후에 그가 수립한 심리학의 체계까지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1900년 이후 그는 꿈착각해학과 같은 정상심리에도 연구를 확대하여 심층심리학을 확립하였고, 또 1905년에는 소아성욕론(小兒性慾論)을 수립하였다. 그의 학설은 처음에는 무시되었으나, 1902년경부터 점차 공명하는 사람들(슈테켈, 아들러, 융, 브로일러)이 나타났으며, 1908년에는 제1회 국제정신분석학회가 개최되어 잡지《정신병리학정신분석학연구연보》(1908∼1914),《국제정신분석학잡지》(1913∼) 등이 간행되었다. 또 1909년 클라크대학 20주년 기념식에 초청되어 강연한 일은 정신분석을 미국에 보급시키는 큰 계기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사변적 경향을 강화하여 이드(id)자아 상위자아(上位自我)와 같은 생각과, 생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이라는 설을 내세웠다. 1938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나치스에 쫓겨 런던으로 망명하고, 이듬해 암으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