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의 사상 및 업적

 1  나이팅게일의 사상 및 업적-1
 2  나이팅게일의 사상 및 업적-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나이팅게일의 사상 및 업적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나이팅게일의 사상 및 업적
나이팅게일은 “간호는 직업이 아니고 사명이다” 는 점을 강조하였다. “간호란 질병을 간호하는 것이 아니고 병든 사람을 간호 한다.”는 그녀의 말은 오늘날 주장하는 전인간호, 즉 육체·정신·감정 일체의 간호를 말한 것이다. 그녀는 간호 사업은 비종교적이어야 함을 주장했으나 간호사 자신은 신앙의 사람이어야 된다고 했다. 이것은 인류애를 바탕으로 피간호자들의 그릇된 관념을 없이 하려는 뜻이기도 했다. 또한 “간호사는 어디까지나 간호사이고 의사는 아니다.” 라고 하며, 간호의 일체는 간호사의 손으로 할 것을 주장했다. 교육, 감독, 지도, 그리고 생활의 보장까지도 간호사에 따를 것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오늘날 독립된 직업으로서의 자유, 경제적 독립, 정신적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 편, 그녀는 간호사의 면허 등록 제도를 반대하였는데 그 이유는 형식적인 자격 제도를 만들면 사명감이 흐려지고 자격을 얻은 후에 계속적인 노력과 헌신적 태도가 철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이팅게일은 건강한 사람이나 환자 모두에게 유익한 간호의 주요 요소를 13가지로서 제시하였는데, 이는 건강유지의 요소와 동일하다고 하였다. 물리적인 환경이 건강의 유지와 회복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시하였고, 개인의 직접간호의 요소로서 바람직한 음식의 선정과 음식 섭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다루었다. 단조로운 환경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다양한 물리적인 환경이나 심리적인 환경의 중요성을 주요소의 하나로 보았으며, 환자의 곁에서 사소한 일에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개별적 간호를 포함시키고 있다. 간호사의 역할 중 관찰의 중요성을 논의하면서 환자는 가족이나 방문객과의 대화보다는 의료인과의 대화를 통한 격려와 충고, 지지 등을 원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녀는 “간호사는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쓰지 않았고 제자들에게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어려움을 겪고 성의를 다하는 태도나 과정은 자신의 긍지와 가치관에 대한 문제이지 누구를 위한 희생은 아니라는 견해이다.
나이팅게일의 업적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크리미아 전쟁에서의 업적을 살펴보자면, 1854년 크리미아 전쟁에서 러시아와 프랑스는 자선 간호사단들이 있었지만 영국은 이에 대응할 만큼의 간호사들이 없었다. 이에 나이팅게일이 간호단을 인솔하여 전쟁터로 향했다. 그 일행이 전쟁터에 도착해보니 1800명이나 수용하는 야전병원에는 위생시설이나 간호를 하기 위한 공급제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피 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누운 부상병으로 꽉 차 있었고, 벼룩이 들끓었다. 하수도 시설이 없어서 세탁도 곤란했고 자리, 옷, 세수도구도 없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간호할 수 없음을 깨달은 나이팅게일은 먼저 청소와 세탁, 그리고 급식상황을 혁신했다. 은닉 된 군대물자를 내어 이용하고 사재를 기울이고 간호환경에 대한 개선을 했으며 환자와 부상병 하나하나를 돌보았고 부상병들의 편지를 써주는 등 초인간적인 활동도 했다. 이렇게 부상병을 위한 간호만 한 것이 아니라 군대 위생제도의 혁신, 관리제도까지 개선했으며 그녀의 봉사 덕분으로 사망률은 42%에서 2.2%로 현저하게 저하되었다. 나이팅게일의 헌신적인 모습을 표현한 문구는 수없이 많으며 부상당한 군사들이 나이팅게일의 모습만 보아도 아픔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녀의 헌신적인 모습은 지금의 간호사들의 우상으로 기억되기까지에 이르는 것이었다. 또한, 나이팅게일은 병원문제 뿐만 아니라 군대 내 다른 부서의 조직 관리에서부터 군대 내 의학실험실 배치, 군의학교를 설치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으며 군인들의 휴게소 설치, 군인의 우편제도와 저금제도까지 실시했다. 위와 같이, 나이팅게일의 전쟁터에서의 활동은 부상병 간호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간호사업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고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힘과 지위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갖게 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다음으로 후반기의 업적을 살펴보면, 그녀는 전쟁 후 영국 군대의 의무 행정을 위한 개선안을 만들어서 의회에 보냈으며 그 실행을 촉구했다. 또한, 1858년에 출판한 “병원에 관한 일들”은 병원의 외양이나 형식에 치중하던 생각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내부의 위생시설과 의사와 간호사의 질과 편리에 중점을 두어야 된다는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었다. 다음 해에 나온 “간호에 관한 일들”은 그 후 50년간 간호사들의 경전과도 같이 보배로운 책으로 사용되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오늘날 환경위생과 개인위생, 정신건강의 중요성, 간호사가 증상관찰에 예민해야 되는 점, 간호원장의 감독상 책임과 윤리적인지도 등 현대 전문 간호사의 역할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1860년에는 영국 성 토마스 병원에 ‘간호교육과정’ 을 설치해서 간호교육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오기도 했다. 미국의 남북 전쟁 때에는 군인의 구호사업을 위한 참고자료를 주었으며 병원보고를 도표식으로 하는 방법과 질병과 사망의 합리적 분류도 최초로 시도했으며 지방의 농촌 위생과 방문 간호사 양성을 주장하였다. 1862년에는 지방적으로 간호 사업을 조직할 때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계획안을 착수하여 40여 년간 이 일에 열중 했고,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하며 여성의 지위 향상과 민족 보건 향상을 위한 노력도 했다. 또한, 간호교육에 대한 이념과 방침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독립된 기금과 제도를 통한 첫 시범학교인 나이팅게일 간호학교가 세워 졌고 현재는 영국의 ‘킹스 칼리지 런던’의 일부이다. 그녀는 적십자 창건을 위해 큰 힘이 되었고, 1907년에는 런던의 적십자대회에서 표창을 받았으며, 그 해 12월에 에드워드 7세로부터 왕실이 주는 최고 훈장을 받았는데 이것은 여성에게는 처음 주어지는 것이었다.
사실 나이팅게일은 전쟁터에서 단 2년 동안만 일했을 뿐, 그 때 얻은 병으로 그 후 50년 동안을 환자로 지냈다. 몸은 비록 환자였으나, 문필 활동은 오히려 왕성했다. 그녀의 업적을 기념해서 1920년 나이팅게일 기장이 제정되었으며, 국제적십자에서는 ‘나이팅게일상’을 마련하여 매년 세계 각국의 우수한 간호사를 선발하여 수상하고 있다. ‘나이팅게일 선서’는 간호사의 좌우명으로도 유명하다. 이렇게 나이팅게일의 사상과 업적을 직접 조사하고 정리하여 보니 역시 간호사를 꿈꾸는 자들의 우상이 될 만한 인물이라 생각했고, 나중에 내가 임상에 나갔을 때에도 나이팅게일의 이념을 본받아 간호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간호학개론」- 수문사 (강익화 저) 「나이팅게일」- 고려의학 (김조자, 최영희 저)
「간호의 역사」- 대한간호협회 (김문실 외) 「간호이론」- 수문사 (김수지 저)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