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에큐메니칼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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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에큐메니칼 운동
들어가는 말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는 수많은 대립과 반목, 분열의 역사가 있고, 또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화합하고 일치하려는 노력들을 엿볼 수 있다. 일찍이 1054년, 기독교는 필리오케 논쟁으로 동방과 서방으로 분리된다. 5세기경부터 표면화된 동방과 서방의 갈등은 크고 작은 불화와 긴장 속에서 화해의 노력을 계속해 오다가, 서방교회가 “성령이 성부 뿐 아니라 성자로부터도 나온다”(Filioque)는 주장을 고수하자 이를 빌미로 신학적 명분을 앞세워 결국 분열하게 된다. 또한 1517년에는 부패한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항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킴으로써 서방은 다시 한 번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로 분열해 오늘에 이르게 된다. 즉 하나의 기독교 안에 세 개의 교회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하시지만 인간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아집과 자기주장이 강하기에 기독교는 분열과 깨어짐을 반복해왔다. 한국의 기독교는 어떠한가. 우리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장로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파들로 나누어져있는 현실이다. 감리교는 수장인 감독회장을 몇 년째 선출하지 못하고 분열의 기로에 서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해 노력해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태동과 역사를 살펴보고 그 에큐메니칼 운동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1. KNCC의 태동과 역사
한국교회의 교회협력운동은 처음에 내한선교사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선교 초창기에 기독교 선교가 아직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했을 때에 한국인들에게 기독교는 여전히 낯설고 두려운 경계의 대상이었기에 선교사들은 교파성을 강조하기보다 선교 자체를 위해 협력하게 되었다. 그리고 1893년에 이르러 장로교공회와 감리교는 선교지 예양 정책에 합의함으로써 효과적인 선교활동을 펼치게 되고 교회협력운동의 커다란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민경배, “NCC 출범 이전의 한국교회일치운동사”『한국교회와 에큐메니칼 운동』(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57-58.
이후 1905년에는 비로소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사들이 ‘재한복음주의선교공의회’를 결성하게 되어 한국에 교파 차이가 없는 단일 한국민족교회 형성을 꿈꾸게 된다. 그리고 이 선교공의회는『The Korea Mission Field』의 간행, 찬송가 및 주일공과의 통일 등과 같은 연합사업들을 진행하였다. 같은 글, 58.
1912년에는 이 선교공의회가 선교협의회로 바뀌게 되고 마침내 1918년, ‘조선예수교장감연합협의회’를 결성하게 된다. 이 협의회는 장감 두 교회의 일치와 협력을 목표로, 한국에서 교파교회로 각자의 길을 걸어갈 것인지, 아니면 단일교회를 형성할 것인지에 대해서 장기적으로 모색할 것을 다짐하였다. 그러다가 1924년, 일단 장감연합협의회가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Korean National Christian Council)가 조직되었다. 가맹회원을 한국교회, 선교사 단체, 그리고 기독교 사업을 하는 비교파 단체 등으로 하는 복합적인 기독교 운동의 협력기구였다. 같은 글, 59.
그러나 이 공의회는 1936년 제13차 연합공의회 총회를 끝으로 해산하게 된다. 그리고 일제의 탄압으로 1945년 해방 때까지 한국 기독교계는 암흑기를 맞게 된다. 강문규, “한국 NCC와 에큐메니칼 운동”『한국교회와 에큐메니칼 운동』(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76.
해방 후 남부대회를 개최하게 되고 이어 ‘조선기독교연합회’를 조직하게 되는데 이것이 실질적인 ‘조선기독교연합공의회’의 후신인 동시에 오늘날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전신이다. 전택부,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과 한국 NCC의 재건운동”『한국에큐메니칼운동사』(서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979),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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