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기독교사] 한국의 선교 방향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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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의 선교 방향과 과제
1. 에큐메니칼(Ecumenical) 선교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란 어원이 헬라어의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왔고 한글로는 ‘교회일치’로 번역되며 이 용어들은 일반적으로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많은 교회에 자극을 주었는데 19세기 이후 교회가 성장을 이루면서 선교 사역에 있어서 에큐메니칼이 필요하게 된 것은 다음의 두가지의 요인이 있다. 하나는 이 시기에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세계 도처에 가장 많은 식민지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서구 열강에 의한 식민지 팽창에 힘입어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그 당시의 선교는 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서구 백인 선교사들은 자국의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서 기독교 내에서 심각한 분열과 갈등의 양상을 보였다 더욱 식민지 도처에서 많은 백인들에게 저질어진 탐욕과 몰상식한 행동들은 선교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었고, 이러한 점을 조정하고 협력하기 위해 에큐메니칼 선교대회를 개최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다른 하나는 17세기 말엽 독일에서 일어난 경건주의 운동과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일어났던 복음주의 각성운동 등의 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19세기 개신교 선교가 싹트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선교 단체들 간의 중복 또는 경쟁으로 인한 선교적 자원 낭비가 가중됨으로서 에큐메니칼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김은수, “한국교회 해외선교정책”, p22
2. 한국적 선교 신학과 선교학의 필요성과 배경
분열된 한국 교회의 상황에서 에큐메니칼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 많은 노력들이 있었고, 지금은 에큐메니칼 선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한국의 교계와 교회들이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한국의 선교를 위해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전개와 동시에 한국 신학의 정체성, 그리고 선교에 대한 입장이 더욱 분명해져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양적 성장을 이룬 한국 선교는 파송 선교사 숫자에 있어서 2006년 말 기준으로 1만 5천여 명에 도달했으며 해외 선교사 기준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선교국으로 부상하였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선교 운동은 2,3세계 선교 운동을 주도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지만 이와 동시에 구조 조정과 질적 성장을 통한 갱신을 요청받고 있다. 이러한 요청 가운데 한 가지 중요한 주제는 서구적 선교 모델을 탈피한 비서구적이면서 성경적인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인식론적인 변화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긍적적인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겠지만 적어도 계몽주의에 의해서 확산된 모더니즘 인식론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즉 인신론적 전제의 변화로 말미암아 비서구적 시각이 요청되고 있다.
그동안 아시아적 선교학의 발전을 저해한 요인은 모더니즘 인식론의 전제와 관련이 있다. 근대 서구 학문의 기초는 계몽주의적 이성에 있다고 할 수 있고, 데카르트 이후 인간의 자율적 이성은 인식 주체로서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보편적 진리를 객관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선천적인 인식 기능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전제는 서구 학문 전반에 영향을 미쳤고 신학과 선교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간이 처한 문화적, 사회적, 개인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자율적이고 보편적인 인간 이성의 인식 능력에 근거해서 보편적인 신학과 선교학이 가능한 것으로 간주 되었다.
복음주의적 기독교는 이러한 모더니즘 인식론과 포스트모더니즘 인식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인간의 이성이 객관적 진리를 오류 없이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진리 주장은 주관적이고 상대적 가치만 가지고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는 없다.
성경의 해석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교회이며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에는 성령의 교통함이 있다. 신학적 작업에는 신학자 개인이 처한 문화적, 사회적, 개인적 상황에 의해서 편견과 선호 등의 오류가 들어갈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성경 해석은 기본적으로 해석학적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학함은 해석학적 공동체 내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성령 안에서의 교제이다. 해석학적 공동체 안에서 성령께서는 신학적 작업에 개입하실 수 있으며 신학적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성령안에서의 교제를 통해서 상호 격려와 전제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학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범위가 국제적일 때 성경 해석은 더욱 객관적이고 풍성해진다. 즉 다양한 종족과 문화로부터 구성되어진 해석학적 공동체에서는 독특하지만 성경적인 시각을 반영하는 해석의 장점을 서로 인정해주고 또한 편견과 오류를 서로 견제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점식. “한국적, 아시아적 선교학의 방향성에 대한 모색”, 신학정론 5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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