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판단력 비판과 미학 - 주관과 보편의 교량으로서의 판단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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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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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칸트의 『판단력 비판』과 미학
주관과 보편의 교량으로서의 판단력에 대하여
칸트 철학에서의 판단력 비판의 의의
칸트의 철학은 개체적 인식론에서 출발한 보편주의 철학이라는 데에 가장 중요한 특질이 놓여 있다. 이 명제가 현재 우리에게 다소 모순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칸트 시대와 현재의 사상적 지형이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경험론의 귀결이 회의론이라는 비판과 관념론이 유아론이라는 비판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그 간극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19세기 중반 이후 유행한 다위니즘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간하면서 생물 종의 개념조차 절대적이지 않고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관념론자들 말대로 세계가 인식주체의 산물이라면, 그들 각각의 세계는 서로 차폐되어 어떤 소통의 여지조차 없을 수 있지 않은가? 종의 개념조차 가변적인 이상에야 각각의 인식구조가 동일하다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에드문트 후설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유아론을 탈피하는 데에 몰두했다. 그 결과 이들은 제각기 상호주관성의 개념과 언어적 전회에 도달했으며, 이는 다시 현대 철학의 주요한 주제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반면에 칸트의 문제의식은 인간의 지성과 감성의 구조가 서로 유사하다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깔아놓은 가운데에, 각각의 인식주체들 간의 경험이 이질적일 때, 어떻게 이 경험을 넘어선 보편의 층위가 존재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인식 구조의 차이가 아니라 경험의 차이로 말미암아 그러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흄에 이르러 정립된 경험론의 귀결점이었고, 우리 모두에게 선험적 구조가 있어 이것이 인식의 출발점이 된다는 칸트의 견해는 이러한 모순을 해결한 것이기는 했다.
실제로 후설 등에 비해 칸트에 있어 인식론적 소통의 문제점은 그다지 두드러진 것이 아니었다. 칸트가 철학의 전범으로 삼았던 흄이 경험적 인식의 차원에서건, 윤리적 차원에서건 그러한 보편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면, 칸트는 우리의 세계가 경험에 차폐되어 있다는 흄의 전제에는 동의하면서도 그러한 인식을 가능케 하는 인식의 선천적 구조나 윤리 규범의 보편타당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입장에는 동조하지 않았다. 바로 이 지점이 칸트 철학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칸트의 인식론과 윤리학은 이러한 견지에서 각각 인식과 윤리의 보편성을 입증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인식의 범위를 질료, 즉 경험의 세계에 한정하면서도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통해, 우리가 현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직관된 대상을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선천적 인식구조가 재구성하는 것이라는 논변을 펼쳐 보편적 인식의 가능성을 정초했다. 『윤리형이상학 정초』와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질료 내에 차폐될 위기에 처한 윤리를 구제하기 위해, 초월을 갈망하는 이념을 끌어들인다. 비록 사변이성이 초월적 이념에 침작하는 것은 월권일 따름이지만, 당위, 즉 실천이성의 차원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성이나 자유 역시 그런 초월적 이념이지만 인식이 아닌 의지와 욕구의 차원에서는 그 존재가 정당화된다. 여기서 실천이성은 자유이념에 근거 두어, 그 어떤 질료에도 조건지어지지 않은 궁극목적을 추구한다.
칸트는 이렇듯 양자의 영역을 철저히 분리시킴으로써 각각 인식적 차원에서의 보편과 윤리적 차원의 보편을 모두 정당화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결과 양자의 간극은 너무 멀어 둘 간에는 그 어떤 교점도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요컨대, 우리에게 가능한 인식은 오직 질료의 세계에 한정되어 있고, 개념은 우리 지성의 선천적 범주가 질료와 관계하여 탄생한다. 칸트에게 있어서 바로 이러한 개념으로 표상된 것만이 객관이며, 바로 이를 통해 이론 이성과 실천 이성의 보편성이 확보된다. 이를 서두의 전제와 연결하여 풀이하자면 다음과 같다. 칸트에게 있어서 객관과 주관은 현재 우리의 일상적 의미에서의 그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즉 주관은 우리 각각에 직관되는 경험적 질료와 그것의 감성적 표상으로, 이는 누구에게나 각각 다르다. 그러나 이 감성적 표상 그 자체는 단지 자연의 잡다(雜多)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런 인식도 가지지 못한다. 인식은 우리의 지성이 선천적 범주를 표상에 적용하여 그 잡다 속에 질서를 만들었을 때에 비로소 성립한다. 이때에 생겨나는 것이 개념으로, 우리는 단지 이 개념들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칸트는 이를 객관이라 이름 한다. 하지만 우리들 제각각에게 주어진 개념들이 서로 다를 수 있지 않은가? 이 역시 그러하기 하지만 우리 개개인들의 선천적 범주의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각각 동일한 감각적 질료들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그 개념들이 공유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즉, 개념을 형성하는 방법은 우리 모두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로 상이한 패러다임 간의 전환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면서도 그 토대가 정초된 자연과학을 떠올려 보라.
또 여기서 보편이란, 역시 개체적인 것을 초월한 그러한 보편의 의미가 포함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본적으로는 그 어떤 예외 없이 자명하고 항상 참인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궁극목적을 표상하는 신과 세계, 자유의 이념도 포함된다. 칸트는 지성에 의해 탄생한 초월이념과 실천이념이 불가분하다고 주장한다. 손봉호, 『칸트의 형이상학』, 민음사, 1995, p. 346.
즉 칸트의 철학이 하나의 완결된 체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성적 자연의 보편 법칙과 실천적 자유의 그것 양자 간에 필연적 연관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온전히 사물들 그 자체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칸트는 다음과 같이 언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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