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프레이리, 체 게바라, 그리고 대한민국

 1  파울로 프레이리, 체 게바라, 그리고 대한민국-1
 2  파울로 프레이리, 체 게바라, 그리고 대한민국-2
 3  파울로 프레이리, 체 게바라, 그리고 대한민국-3
 4  파울로 프레이리, 체 게바라, 그리고 대한민국-4
 5  파울로 프레이리, 체 게바라, 그리고 대한민국-5
 6  파울로 프레이리, 체 게바라, 그리고 대한민국-6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파울로 프레이리, 체 게바라, 그리고 대한민국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파울로 프레이리, 체 게바라, 그리고 대한민국
지난, 9월 말 교육 철학과 역사 과제의 일환으로 파울로 프레이리(이하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를 읽게 되었다. 이병승 교수님의 설명으로는, 지난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대통령이 국가의 대부분의 권력을 차지한, 이른바 독재정권이 들어선 시대에 우리의 선배들이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페다고지’를 일어판으로 구하여, 일어를 직접 해석해가며 읽었다는 나름의 사연이 있는 책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게다가 ‘해방교육’을 주창한 이 저작은 제3세계의 민중교육학의 고전으로써 이름을 날리었고, 프레이리의 대표적 저작중 하나이다. 프레이리는 군대에 가기 전에 교직 수업을 수강하면서 언뜻 들어본 적이 있었던 위대한 현대 교육혁명가였지만, 저작을 읽어볼 기회가 없던 찰나에 이런 좋은 기회를 얻어서 책을 읽고, 그에 대해 독후감을 쓰게 되었다. 책의 내용에 대해 고찰하기에 앞서서 프레이리의 업적과 생애에 대해 가볍게 다루어 본 뒤 본문을 언급해 볼까 한다.
①파울로 프레이리의 생애 (Lifetime of Paulo Freire)
파울로 프레이리는 1921년 브라질에서 태어난 교육혁명가이자 민중교육자이다. 1997년에 생을 마감하였지만,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 ‘교사론(Teachers as Cultural Workers)’, ‘망고나무 아래서(Pedagogy of the Heart)’ 등 희대의 교육혁명적 저서들을 남기었다. 그는 1930년대에 세계경제대공황을 맞아 부유한 도시에서 다소 빈곤한 도시로 이사를 하였다, 그는 그때 쯔음에 졸업을 하게 되었고, 졸업 후에는 종종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과 축구를 하였는데, 이는 그에 있어서 교육 혁명가로서 시발점이 되었다. 그는 빈곤이 배움에 있어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였고, 따라서 그의 생애를 피억압자들을 위해 보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1961년 헤시피대학교의 문화 확장사업을 담당하면서 문맹의 사탕수수 노동자들을 45일 만에 읽고 쓰게 한 업적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1964년, 반역혐의로 군부에 의해 볼리비아로 잠시 국외추방이 되고, 그는 칠레에서 유엔사업을 비롯한 여러 가지 중책을 맡게 되고, 그 와중에 그의 역작인 ‘페다고지’를 저작하게 된다. 그의 저작 및 공로를 인정받아 1969년에는 하버드대학교의 초빙교수로 임명되고, 그의 저작은 스페인어 및 영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고국 브라질에서는 정치적 탄압으로 인해 1974년까지 발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버드대학교 이외에도, 캠브릿지, 메사추세츠 등 저명한 미국대학에서 교육혁명에 대해 역설하였고,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계 교회의회의 특별교육자문으로서 활동하였다. 이후 이러한 교육개혁을 아프리카 식민지인 기니 및 모잠비크에서도 전개하였고, 1979년엔 가까스로 그의 고국인 브라질에 복귀할 수 있었다. 복귀한 이후에 그는 상파울로에서 성인 문맹인들을 위해 힘썼다. 1986년 그의 첫 번째 부인인 엘사가 죽게 되고, 이후에 재혼하긴 하지만, 그는 결국 1997년에 심장병으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문해 교육 캠페인을 펼치면서, 브라질의 피억압자뿐만이 아닌, 전 세계(특히 제3세계)의 피억압자들의 억압적 현실상황을 탈피시키기 위하여 지배논리 관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계속 하였다. 그의 위대한 교육개혁 및 혁명가적 업적은 고대의 플라톤부터 근대의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반식민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전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②‘페다고지’의 주요 이론 및 개념 (Main theory of Pedagogy)
→서론
페다고지의 영문제목은 ‘Pedagogy of the Oppressed’이다. 한국어로 번역됨에 있어서 뒤의 Oppressed에 대한 번역이 제외되었는데, Oppressed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억압된, 학대받는’ 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즉 The oppressed 억압받는 자, 학대받는 자 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영문 제목 그대로 해석해보면 어떨까. 억압받는 자들의 교육학, 피억압자들을 위한 교육학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겠다. 왜 제목이 이렇게 쓰여졌는지는 본문으로 들어가면서 다소 어렵지만,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는 ‘Freedom is acquired by conquest, not by gift. It must be pursued constantly and responsibly.’ 즉 ‘자유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극복에 의해 얻어진다. 자유는 꾸준하고 책임감있게 추구되어야 한다.’ 라는 문장을 언급하였다. 이 문장에서 시사하는 바로는 피억압을 받는 피지배 계층이나 피억압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들은 항상 지배계급의 명령, 지배를 받으면서, 그들 본인을 위한 노력보다도 그들의 주인들을 위해 노동을 하고 그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위의 문장에서 말한대로 그런식이라면 그들에게 자유란 없다. 그들의 가난과 배고픔은 후대를 이어서 계승될 것이고, 지배계급들은 계속해서 지배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극복을 하여야 한다. 무엇을 통해 극복을 하느냐 하는 문제는 바로 교육 그리고 실천이다. 바로 ‘Praxis’(이하 프락시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이다. 프락시스의 사전적 의미를 한번 알아보면 ‘The process by which a theory, lesson, or skill is enacted, practiced, embodied, or realised.’ 이다. 즉 ‘이론이나 교훈, 기술들이 실제로 행해지고, 결합되는 과정’ 쉽게 말해서 배움으로 습득된 모든 것들이 실생활에 적용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라고 간략하게 얘기할 수 있겠다. 프레이리는 프락시스를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겼고, 프락시스가 실제로 행해져야 교육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는 민중을 교육하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진 모든 교육자는 진정으로 민중 안에 깊게 침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스스로 혁명적 지혜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민중과 친교를 이루고(마치 그가 가난한 브라질 아이들과 축구를 했던 것처럼) 민중의 언어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즉 교육자가 민중에게 완전히 동화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humanization’을 언급하는데, ‘인간화’ 즉 피억압자들이 비인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억압자’의 시선에서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시선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꾸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 스스로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프락시스가 교육의 목표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이러한 사실들을 주창하면서 단지 이론만을 이야기하는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정치활동과 해방 운동, 정권의 장악을 지향하는 정치적 운동들이 피억압자들이 해방될 수 있는 필수불가결한 행동이라고 바라보고, 실제로 여러 정치적 운동을 행하였다. 과거의 무기력한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했다고 책은 이야기한다.
→본론
페다고지에서 말하는 흥미로운 이론중에 하나로 ‘은행이론’을 들 수 있겠다. 이것은 학생들의 뇌와 은행의 잔고를 은유적으로 비유한 이론인데, 내용은 이렇다. “학생들의 뇌는 비어있는 은행잔고와 같다. 선생들은 학생들에게 저축을 한다.” 여기에서 그는 피교육자의 창의성이 결여되는 과정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선생이 전달하는 내용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것은 마치 은행의 빈 계좌에 돈을 예금하는 과정과 같다고 보고 있다. 프레이리는 학생들이나 선생들중 누군가가 비인간적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프락시스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선생은 학생들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교육을 접근하고, 학생들에게 그들이 교육을 통해 불완전함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을 주는 것, 그들이 극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힘을 주기를 원하였다. 따라서 그는 문제제기식 교육을 주창한다. 문제제기식 교육이란 교육자와 피교육자간의 변증법적인 상호작용이 중시된다. 또 은행저금식 교육이 대화를 허용하지 않음에 반해 문제제기식 교육은 대화를 교육의 필수요소로 보고 있다. 즉 선생의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선생과 학생의 여러 가지 대화 및 토론을 통해 학생들은 자기 주체적인 지식을 함양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함양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시도와 접근만이 그들을 비로소 그들의 사회, 지배자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낸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교육의 접근방법을 프레이리는 ‘conscientization’ 즉 ‘의식화’라고 설명하고 있다. 은행이론에서 의식화라는 용어를 이끌어 낸 것이다. 그는 중간에 시체애호증(necrophilia)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이는 교육자와 피교육자를 대상화시키는데에 의의를 둘 수 있겠다. 교육현장에서 반론이나 비판, 대화를 두려워하는 교육자는 마치 시체를 사랑하고 탐하려는 시체애호가 즉 네크로필리아와 다르지 않을 것 이라는게 그의 견해이다. 다소 비유가 강한 느낌이 있지만 그만큼 교육자와 피교육자간의 대화를 통한 비판적 인식 함양을 강조하였다. 피교육자들은 계속하여 그들이 주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dialogic’ 즉 ‘대화법’에 대해서도 강조하였는데, 이는 식민화된 사상을 일치와 협력, 조직, 문화적 일치를 통해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언급한다. 그는 ‘antidialogic’ 즉 ‘非대화’는 조작과 선동, 문화침략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대화를 통해 비인간화를 벗어나야 함을 강조했다.
→결론
프레이리는 인간화, 은행이론, 의식화, 대화법, 시체애호증 등 수많은 이론 및 인용을 통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고 있다. 결국 프락시스를 통하여 피억압자들은 해방될 수 있다는 교육혁명가적 이론을 주창하고 있다. 초기에는 문맹들을 계몽시키면서 그들을 투표에 참가시키며 주체적 의식 함양에 힘을 쓰고, 더 나아가서 그들의 교육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하면서, 그들의 교육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은행이론과 같이 죽은 교육, 기계식 주입은 그저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할 뿐이고 계속해서 가난은 세습될 뿐이다. 끊임없이 교육의 과정에서 소통을 피억압자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주요 열쇠로 바라보고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