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과 중국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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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 중국의 만남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서양과 중국의 만남
Ⅰ. 서양 속에 중국
1.서양 속의 중국사상
2.중국선교사
Ⅱ. 중국 근대 주요 학자들
1.아마추어 중국학자/박학자
2.마테오 리치의 전도정책과 전례논쟁
3.라이프니츠와 중국의 만남
Ⅲ. 중국철학에 대한 관념론적 편견
Ⅳ. 참고문헌
Ⅰ. 서양 속에 중국
1.서양 속의 중국사상
중국의 사상이 근대 초 서양에 전해질 때 중국선교사가 매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중세적 세계의 울타리가 허물어지면서 ‘중국’이 유럽인에게 새로이 인식되었을 때, 그 충격은 코페르니쿠스가 당대에 던져준 그것과 비교될 정도였다. 박상환, 『고쳐읽는 중국철학 이야기』, 서울: 도서출판 상, 2011. 156쪽 참조.
그러나 서양에 소개되었던 중국사상은 서양학자의 눈을 통한 해석이었으므로 중국사상은 유럽인의 의식 속에서 객관화 될 수는 없었다. 이 매개에 관한 문제는 인식의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비교철학의 본질적 문제를 함의하고 있다. 보편과 특수는 결국 개별 속에 매개되어 인간에게 인식된다. 유럽인이라는 개인에게 특수하게 다가왔던 중국은 인간의 해방과 복지를 자각하고 있던 유럽의 계몽주의적 인간관이라는 보편의 지평에서는 역시 하나의 개별을 의미했다 박상환, 『고쳐읽는 중국철학 이야기』, 서울: 도서출판 상, 2011. 156쪽 참조.
2.중국선교사
중국선교사, 특히 예수회(Society of Jesus)의 활동은 그들과의 경쟁관계에 있던 다른 교단 사이의 이해대립을 가져왔다. 이것은 근대유럽에서의 중국문화 전반 그리고 중국철학 수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6.17세기의 ‘라이프니츠’등 상이한 문화 간의 이해와 그것이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효용성에 대해 낙관하였는데, 이는 초기 계몽주의의 르네상스적 세계관 이었다. 박상환, 『동. 서 철학의 소통과 현대적 전환』 서울: 도사출판 상, 2005, 27쪽 참조.
1567년, 명의 해금정책이 완화된 뒤부터 중국의 연안에는 일본과 마닐라, 바타비아, 베트남, 타이로 가는 중국선박이 줄을 이었다. 서양인이 ‘킨톤’이라 불렀던 광저우에는 서양 선박도 많이 드나들었다. 포르투갈인이 터를 잡은 마카오를 비롯해, 외국의 상인이나 선교사가 중국의 항구 도시에 눌러 앉은 경우도 많았다. 그들 중 일부는 베이징에서 활동한 사람도 있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처음 읽는 중국사』 휴머니스트, 2014, 225-226쪽 참조.
예수회 선교사였던 마테오리치, 아담 샬이 그런 인물이었다. 그들은 지리, 천문학 지식, 총이나 대포 만드는 기술을 소개했다. 또한 성경을 번역하고 천주교 교리를 소개하는 책자를 펴냈으며 포교 활동도 벌였다. 이들을 통해 ‘서학’이라 불린 천주교와 서양의 학문이 소개되었다.
선교사의 보고를 통해, 그리고 중국과 거래하는 상인을 통해 중국의 실정도 유럽에 소개되었다. 유교경전이 서양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중국 정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특히 중국에서 수입된 차와 도자기는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귀족사회에서 엄청난 유행을 끌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처음 읽는 중국사』 휴머니스트, 2014, 225-226쪽 참조.
Ⅱ. 중국 근대 주요 학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