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고산 소개, 고산 유적지, 녹우당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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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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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산 소개
고산 윤선도(1587, 선조20~1671, 현종12) 선생은 조선중기에 호남이 낳은 대시인(大詩人)이며, 조선조 시조문학을 마지막 장식한 대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선생은 학문만이 아니고 철학을 위시해서 경사서 제자백가(經史書 諸子百家)에 통달하여 정치, 학문, 예술 전반에 걸쳐 조예가 깊고 천문, 음양지리, 복서, 의약 등 다방면에 통달하셨으며, 원림경영과 간척사업을 하여 오늘날까지 전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조문학을 으뜸으로 꼽는다. 해남 육현(六賢)의 한 분으로서 향현사(鄕賢祠)인 해촌서원(海村書院:해남읍 해리 소재)에 배향된 선생은 전란과 당쟁이 소용돌이치는 격랑의 사회현실 속에서도 강직한 성품의 선비로 조선 시대의손꼽히는 지성이셨다. 정치의 중심에서 나랏일을 맡았을 때는 정성을 다하여 국가경영의 대도를 역설하셨고, 의롭지 못한 일을 보면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 결과 세 차례에 걸쳐 십수년의 유배생활을 하시는 등 유배와 출사, 은둔으로 이어져 있지만, 그 근본은 오로지 나라를 위하는 정신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를 잘 형상화하여 국문학의 비조로서 우리에게 귀중한 문화유산을 남겨주신 분이다. 한시는 물론이고 국문시가는 값진 국문학의 보배이다.
고산 유적지
고산선생의 유적지는 전국에 산재해 있다. 그 형태를 세분해보면 주거지, 은둔지, 유배지 등으로 구분된다.
- 주거지로는 해남 녹우당, 남양주 고산촌, 서울 연화방(연지동), 명례방(명동), 수원 등
- 임시거주지로는 진도 굴포, 고흥 고금도, 성산(성주), 안변 등
- 은둔지로는 완도 보길도, 현산 금쇄동(수정동 문소동 포함) 등
- 유배지로는 함경도 경원, 함경도 삼수, 부산 기장, 경북 영덕, 전남 광양 등이 있으며
이 중에서 해남 녹우당(사적 167호), 완도 보길도(사적 368호), 현산 금쇄동(사적 432호)등은 이미 사적지로 지정되었고, 남양주 고산촌, 부산 기장의 유적지는 시비 건립과 표지판 설치 등 유적지 개발이 진행중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발굴, 보존하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한지가 오래되지 않아서 그 동안 고산선생의 유적지 발굴 및 개발에 소홀함이 없지 않았으나, 고산선생을 사랑하는 학자들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유적지발굴에 박차를 가해지고 있는 상황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고산선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산선생의 유적지를 즐겨찾을 수 있도록 보다 지속적인 발굴과 보존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어른들이 후손들에게 남겨줄 마지막 유산일 것이다.
녹우당 유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