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경영을 통한 세종의 조선 정체성 확립 조직 전략 국제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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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재경영을 통한 세종의 조선 정체성 확립 조직 전략 국제경영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에서부터 만원권 지폐를 비롯해 병원과 학교, 호텔, 그리고 무수히 많은 상점에 유네스코가 세계 각국에서 문맹퇴치사업에 가장 공이 많은 개인이나 단체를 뽑아 매년 시상하는 문맹퇴치 공로상인 ‘세종대왕 상(King Sejong Prize)’까지..
아마도 특정 인물의 업적 및 이름이 이렇게 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는 역으로 세종대왕은 세계적으로 손꼽을 수 있는 위대한 왕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사에 있어서 어쩌면 혼란스럽던 격동의 시기로 꼽을 수 있는 시점에서 무수히 많은 업적을 이룩해 낸 세종대왕에 대한 호기심이 나에겐 이 수업을 수강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수업을 더해 갈수록, 세종에 대하여 알아갈수록, 그의 수많은 업적은 그 하나하나가 실로 위대한 것이며 그러한 업적은 그이기에 가능하였다는 생각은 당연시되어갔다.
그렇다면 그의 31년 6개월 동안의 그리 길지 않은 재임기간 동안 정치, 사회, 문화 등의 조선시대의 전 분야 걸쳐 이룩해낸 업적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인재경영’이라는 확신과 함께 이 보고서를 서술해 나가고자 한다.
경제, 정치, 스포츠 등 한국의 모든 영역에서 ‘삼성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낳게 하고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서 일군 핵심 역군은 다름 아닌 이건희 회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핵심인재 1명이 수천, 수만 명을 먹여 살린다”라는 그의 인재론에서 우리는 철저히 그가 한 집단의 우두머리로서의 역할을 알고 있었음을 인지할 수가 있다.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한 개인의 힘으로 어떠한 조직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2인 이상의 구성원이 모여 이루어진 단체의 발전 원동력은 어떠한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유능한 인재들만큼이나 그 조직에 있어서 그들을 조율하며 그들의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어울릴 수 있는 그 조직에 필요한 인재를 발탁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건희 회장과 세종대왕이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이유는 바로 자신들의 뛰어난 안목을 토대로 유능한 인재를 뽑아 이들을 조율시키며 그들의 노력의 산출물이 나타나기까지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또한 그들의 업적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숨은 잠재력까지도 자극하여 국가와 기업의 발전 및 성장에 이바지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과학의 다섯 분야로 세분화하여 조선시대 전 국가적인 발전을 이루어 낸 세종의 업적 및 그러한 업적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 세종의 주변 인재들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1)정치-권력의 수평적 융화
세종의 정치는 가히 초인적인 인내와 노력으로 문치의 이상을 실천함으로써 신하들을 설복해 왕권강화를 이루어 내었다. 아버지 태종이 실체의 권력을 다루는 혁명적 정치가였다면 세종은 여백의 권력을 활용할 줄 아는 경륜의 정치가였다.
집권 초기 그는 미흡한 학문적 역량과 경륜을 쌓기 위해 신하들과의 학술 토론인 ‘경연(經筵)’에 열성을 다했다. 한편 그는 인재등용에 있어서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하기 보다는 신구 세대 혹은 신구 세력의 조화를 도모하였다. 세종은 인재를 키우는데 있어 집현전의 모델을 보여줬고, 기존의 인재들을 구하면서는 허물을 이해하는 관대함을 바탕으로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을 국정에 활용할 줄 아는 실용적인 용인술을 갖춘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세종의 신하들로는 의금부의 황희와 맹사성, 허조, 그리고 김종서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굵직한 인재들이 포진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