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공학기초설계 스티브 잡스와 어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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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프레젠테이션의 귀재, IT, 애플이라는 말만 들어도 생각나는 인물, 고집불통 독불장군 독재관 그, 스티브잡스. 2007년, 비즈니스 위크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가장 닮고 싶은 CEO는 누구인가 ?” 에 대한 온라인 투표를 실시했습니다. 놀랍게도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애플의 CEO 스티브잡스를 선택했습니다. 이미 잡스는 이 시대에 독보적인 성공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비즈니스의 역사속에는 전설적인 CEO들이 여러 있습니다. 크라이슬러의 아이아코카나 GE의 잭 웰치 등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스티브 잡스처럼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적은 없습니다.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요? 먼저 스티븐 잡스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1.스티브 잡스는 누구인가?:잡스의 소년기, 청년기
스티브잡스는 입양아였습니다. 대학원 재학생이던 잡스의 생모는 자신이 아이를 양육할 수 없게 되자 입양을 받아 줄 가정을 찾았고, 잡스를 대학까지 공부시켜준다는 조건으로 잡스를 입양 보내게 됩니다. 그는 어려서 별난 행동으로 양부모인 폴과 클라라 잡스 부부를 종종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잡스는 새벽 4시부터 깨어나 부모를 괴롭히는 말썽꾸러기 였으며,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소극적인 아이기도 했습니다. 커서는 히피 기질이 좀 강하고 전기공학과 전자공학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제외하곤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잡스는 빌 게이츠가 기숙사에서 포커판을 벌이고 있을 때, 휴렛패커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빌 게이츠가 어머니의 힘을 빌려 IBM에 줄을 대고 있을 때, 잡스는 친구인 스티브 위즈니액과 함께 장거리 전화를 공짜로 걸 수 있는 ‘블루박스’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스무한 살이 되던 해, 잡스는 친구 워즈니액과 함께 자신의 집 차고에서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재산 목록 1호였던 폭스바겐 마이크로버스와 위지니액의 HP계산기를 팔아서 마련한 돈 1300달러가 그의 첫 사업 자금이었습니다. 지금은 개인용 컴퓨터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컴퓨터’라는 단어는 오늘날 은행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메인 프레임 컴퓨터를 의미했습니다. 그런 상식을 깨는 발상의 결과가 애플이 내놓은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 ‘Apple I였습니다.
Apple I을 만들 당시 잡스와 위즈니액
이후 IBM의 PC가 시장을 장악하게 되자, 애플은 마우스와 그래픽 타입의 메뉴로 사용성을 높인 매킨토시를 출신하여 대항합니다, 선불교의 독실한 신자이기도한 잡스는 한때 유명한 명상가를 만나기 위해 돌연 직장을 그만두고 멀리 인도로 여행을 가기도 했던 독특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회사 이름인 ‘애플’도 선불교 애호가들과 오리건의 한 사과 농장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생각해낸 이름이여, 대표 브랜드인 ‘매킨토시’ 또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과 품종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Apple I의 성공에 힘입어, 1980년 12월에 애플의 주식 공모가 시작 되었습니다. 이 공모는 1950년대 중반에 있었던 포드자동차의 주식 공개 이래 가장 높은 신청률을 기록하며, 한 시간 만에 460만주가 팔려 나가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변변한 학벌이나 돈, 경험도 없던 두 젊은이가 사업을 시작한지 5년도 안되어 ‘포춘’지 선정 500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잡스는 이 주식 공모를 통해 2억2천만 달러의 수익을 얻게 되었고, 약관 25세 나이에 백만장자 반열에 올라서게 됩니다. 1982년 9월 말, 캘리포니아 파하로 듄스에서 열린 매킨토시팀의 워크숍에서 잡스는 칠판 위에 ‘해적이 되자’라는 문구를 적은 후, “주 90시간 작업, 즐기면서 일하자!”“라고 말하며 팀원들의 분투를 촉구하던 리더였습니다.
존 스컬리
1982년 ‘타임’ 신년 특집호는 애플의 퍼스널 컴퓨터를 ‘올해의 기계’로 선정했고, 스티브 잡스의 얼굴이 표지 1면을 장식했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잡지에 실린 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애플 컴퓨터의 공동 개발자인 스티브 워즈니액이 “애플 컴퓨터를 개발하는데 스티브는 회로판 하나, 디자인 하나, 코드 하나도 직접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며칠을 고민한 잡스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매킨토시 개발에 착수하기 시작합니다. 1983년 잡스의 독선적이고 모험적인 경영 방식에 불만을 품은 이사회가 그에게 경영권을 주지 않으려 하자, 잡스는 자신이 통제하기 쉬울거라 생각 되는 경영의 귀재 존 스컬리를 사장으로 영입합니다. 이미 펩시콜라와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스컬리를 영입하며 잡스가 남긴 말 한마디는 미국 비즈니스 세계에 신화처럼 전해오는 일화이기도 합니다. “정말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설탕물이나 팔며 남은 인생을 허비할 생각인가?”
1984년 1월말, 미식축구 결승전인 슈퍼볼의 중계방송 도중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광고 하나가 등장합니다. 화면 속에서 말끔한 차림의 신사가 연설하는 모습이 비춰지고, 회색 옷을 걸친 무기력해 보이는 사람들이 화면 속 신사의 연설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밝은 색상의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이 나타나 스크린을 부숴버리는 내용의 광고였습니다. 즉 신사는 IBM을 타나내는 빅브라더를, 노동자들은 사용자들을, 젊은 여성을 애플을 암시하는 광고로 ‘IBM’이 만들어 놓은 낡고 획일적인 사고의 틀을 애플이 깨버리겠다는 내용을 담은 다소 자극적인 것이었습니다.
IBM을 빅브라더로 은유한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