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문학 수업 읽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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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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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가다가 광야로 탈출(exodus)하였고, 나중에는 팔레스타인 땅에 근거지를 잡게 되고 BC 1000년에는 다윗이 왕이 되었다. 어떤 진리가 참이냐 거짓이냐 하는 문제는 과학적(생물학적)인 문제이며, 참과 진실은 인생, 혹은 생(生)과 관련이 있다. 다윗 왕은 아기였을 때 지혜가 뛰어났고, 책에서의 궁전에서는 부를 누렸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로부터 탈출하여 국가를 만든 뒤에는 그 국가가 각각 페니키아, 앗시리아, 바빌론에게 멸망하였다. 출애굽기(Exodus)는 창세기 바로 다음으로, 제국, 독재, 탄압, 무력통치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광야에서는 십계명, 서리법, 추수법, 약자보호법 등 각종 법들이 탄생했으며, 그 후로는 이스라엘이 정착, 사물, 다윗 즉위(BC 1000년), 솔로몬 즉위 후 남북 분열의 과정을 거쳤다. 남쪽은 BC 587년에 바빌로니아 제국에게, 북쪽은 BC 721년에 앗시리아 제국에게 멸망하였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대한민국 제1·2·3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기독교 신자였는데, 3·15 부정선거를 치르게 하여 4·19 혁명으로 물러났다. 4·19 혁명 이후, 교회는 보수와 진보로 갈라졌는데, 보수와는 반대로 진보 진영은 이승만의 회개와 반성을 요구하였다. 김재준 목사는 한신대의 기장이었는데, 그는 진보 진영의 대표적 인물로서 박정희 당시 대한민국 제5·6·7·8·9대 대통령의 독재와 반민족주의에 거세게 항의하였다. 십계명, 서리법, 추수법, 약자보호법은 θ의 나라, 하늘나라, 天國, 왕의 역할, 독재군주, 자기가 만든 제국 등과 관련이 있다. 왕의 역할, 독재군주, 자기가 만든 제국은 구약 4-6권 왕에 대한 설명이다. 예언자는 이사야서, 예레이아서, 아모스서, 호세아서 등에 나온다. 백성들에 대한 심판을 주장한 진짜 예언자와 “괜찮다.”고 한 가짜 예언자는 서로 대립하였다. Exodus와 관련 깊은 것은 예언자, 법, 지배, 안식일, 심판 등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만드는 과정이 1주일이었는데, 첫째 날에는 빛이 있으라 하셨고 둘째 날에는 하늘과 땅이 있으라 하셨으며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는 보기 좋다 하셨다. 여섯째 날에는 사람(θ의 모습)을 만드셨는데 이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와우~보기 좋다!”였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완전히 쉬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보시고 아름답고 정의로우며 평화롭다고 하셨다. 엘리베이터를 보면 4층 표시를 F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정의는 약자를 보호하고,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어떤 자료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첫째 날에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둘째 날에 땅, 비와 하늘을, 셋째 날에 빛을 내는 별, 달, 해(태양)를, 여섯째 날에 사람을 만드셨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 쉬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Like Image of God는 곧 Human right에 해당한다. 아름답고 정의로우며 평화로운 세상은 곧 죄, 즉 망, 악인, 제국, 고통으로 인해 Exodus vision, 구원 해방, 단초 예언자 1%와 99% 등으로 바뀌었다.
이스라엘의 왕조는 크게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시대(BC 1005-926년경), 통일왕국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된 후에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한 때까지(BC 926-722년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홀로 남은 남 유다마저 바빌로니아 제국에 함락당하여 이스라엘의 왕조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는 시기(기원전 722-587년경)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다윗은 비록 지략과 술수가 뛰어나고 이스라엘을 통일하여 이스라엘 최고의 왕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사울에게 쫓겨 이방국가로 망명하였고, 떠돌이 용병들을 모아 사병을 조직한 후 블레셋 왕의 휘하에서 시글락 성주가 되어 약탈을 일삼으며 생활하다가 예루살렘을 빼앗아 자신의 근거지로 삼았다. 다윗은 왕위에 오르고 나서 야훼신앙의 상징인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예루살렘 중심의 종교적 정치적 중앙집권화를 이룩하였다. 다윗은 자신의 아들 솔로몬에게로 권력세습을 하였으나 솔로몬의 사후에 이스라엘은 결국 남북으로 분단된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의 “소리를 듣고서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능력”을 구하였는데 이 마음이 결국 이스라엘 전체를 고통 받게 하였다. 그는 호화스런 생활을 유지하고 과도한 건축 사업을 추진하며 백성들을 핍박하고 지역차별정책을 실시하며 정략결혼을 실시하여 북부지파 백성들의 원성을 크게 샀고, 마침내 이스라엘은 두 세대를 못 넘기고 분열하고 말았다.
다윗과 솔로몬 정권 이후 이스라엘은 전통 성소 중 한곳인 ‘세겜’에 모여 민중의 뜻을 모아 지도자를 추대하려는 전통을 다시 회복하려고 노력하였다. 르호보암은 민중을 힘으로 짓누르고 더욱 탄압하는 길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을 비극적 파국으로 몰고 갔다. 결국 이스라엘은 북쪽의 열지파와 남쪽의 유다지파로 갈라지고 말았다. 북이스라엘은 남유다보다 정치경제적으로 우위를 유지하였으나 많은 북이스라엘의 왕들도 민중을 섬기지 않았고, 북이스라엘은 늘 외세의 위협에 시달렸다. 남유다는 외세를 끌어들여 북이스라엘을 위기에 빠뜨리는 일들도 저질렀다.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앗시리아 제국에게 멸망하였다. 그러나 남유다는 이로 인해 이제 북방 외세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아야만 하였고, 결국 남유다마저 기원전 587년에 바빌로니아에 멸망하고 말았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겪었던 역사의 가르침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길 바랐지만, 이스라엘은 결국 왕정국가로 수립되었다. 그러다 남북으로 갈라져 하나님이 아닌 외세에 의존하며, 이방의 삶의 방식을 채택하다 북방의 제국들에 의해 멸망하였다. 겉으로 보이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슬프고 안타까운 역사를 꿰뚫고, 그 역사 속에 참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하므로 성서가 기록되고, 우리가 성서를 읽는 것이다. 야훼 하나님은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시킨 후, 이스라엘 왕정 시기에도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것으로 따지자면, 예언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비’는 앞일을 신통히 맞추는 예언자(豫言者)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외치는 예언자(預言者)이다. 하나님의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지금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해 말씀하시므로 미래보다 현재에 더욱 관심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처럼 이스라엘의 왕들도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인해 ‘궁정 예언자’들을 고용하여 궁정에 두었다. 그러나 이들은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대신 왕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썼으며, 백성들의 귀에 단 소리만 전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러한 가짜 예언자와 제사장들을 고발하고 있다.
엘리야는 기원전 9세기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 특히 아합 왕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정신적 지도자이며 이스라엘 공동체의 예언자 중 가장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통틀어 가장 막강한 국권을 과시하던 오므리와 아합 왕 시대(기원전 885-851년)에 등장하여 이스라엘의 야훼 신앙이 이방의 종교로 희석된 후, 이스라엘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함을 보고, 바알종교와 정면 대결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또한 엘리야는 종교뿐만 아니라 개인과 국가 전체를 야훼 하나님의 방식으로 지키려는 거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는 갈멜산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고 대대적인 바알 예언자들의 숙청을 이루게 되나, 이 거사는 곧 실패로 돌아가고, 엘리야는 살해의 위협을 느끼며 떠돌이 신세가 되어 버린다. 거기에서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절망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삶의 순간마다 다가오는 미세한 찰나들 속에서 이루어지며, 하나님은 엘리야의 희망을 이어나갈 하나님의 일꾼들도 준비하고 계심을 깨달았다.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한 예언자, 그가 바로 엘리야이다.
엘리야와 엘리사를 계승한 북이스라엘에서 예언자는 바로 아모스이다. 그는 최초의 ‘문서예언자’로서 그를 필두로 문서예언자의 시대, 즉 예언자의 외침이 예언자 자신 혹은 후대에 의해 기록된 후 그러한 글들의 제목으로 예언자의 이름이 붙여지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예언서들은 구약성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아모스는 본래 남유다의 드고아에서 출생하여 나무와 짐승을 키우다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북이스라엘에서 예언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기원전 8세기, 즉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시기, 그러니까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하기 전, 마지막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 활동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당시 상황을 보고,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아모스는 심판과 멸망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다시 살 수 있는 길도 분명히 제시하였다. 그는 “너희는 야훼 하나님을 찾아라. 그러면 산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 말은 우상숭배와 같은 껍데기 종교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종교생활과 야훼신앙을 분리시키면서 죄악과 멸망의 길을 걸어갔다. 아모스는 차라리 모든 거짓 제사와 종교행위를 그만두되, 공희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고 하였다.
예언자 하박국은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올리브 농사와 밭농사도 모두 망쳤고 양과 소떼가 없어 우리가 텅 빈 상황에서도 하나님 덕분에 기쁘다고 노래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북이스라엘이 기원전 721년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남유다만 남겨진 후, 앗시리아 제국도 멸망하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열국의 각축장이 되었다. 이를 틈타 이집트는 남유다 왕 여호아하스를 살해하고 새로운 왕을 세워 그 이름마저 엘리야김에서 여호아김으로 바꾸게 했다. 여호아김은 이집트에 조공을 바치려 백성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했고, 친 이집트 외교정책으로 바빌로니아의 미움을 샀다. 결국 여호아김의 통치는 남유다를 멸망케 하였다. 하박국은 이러한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이나, 시대를 아파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하게 구하는 기도의 인물이었다. 그는 하나님은 언제까지 침묵만 하실 것인지, 그리고 그 침묵 앞에서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께 희망을 품고 간구하기를 그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