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관의 역사적 발달 배경

 1  사회복지관의 역사적 발달 배경-1
 2  사회복지관의 역사적 발달 배경-2
 3  사회복지관의 역사적 발달 배경-3
 4  사회복지관의 역사적 발달 배경-4
 5  사회복지관의 역사적 발달 배경-5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사회복지관의 역사적 발달 배경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9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자 많은 농촌인구가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었다. 그러나 도시에는 갑자기 몰려드는 많은 농촌 사람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일자리는 넉넉하지 못하였고 주택은 턱없이 부족하고 비좁아 많은 사람들이 마치 우리가 1960년대에 겪었던 것과 같은, 그보다 훨씬 어려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빈민들이 모여 사는 판자촌 같은 지역이 생겨나고 그곳에는 실업자, 단순 근로자들이 모여들고, 개중에는 구걸로 연명하는 걸식자, 범죄자, 약물중독자, 떠돌이 같은 사람들도 많아 도시 전체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이렇게 되자 킹슬레이, 칼라일, 러스킨, 모리스 등과 같은 이른바 기독교사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영국의 지식인들이 어려운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개량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들은 런던의 빈민들이 모여 사는 이스트앤드 지역의 교회를 중심으로 사회개량운동을 벌여 나가기 시작하였다. 이 지역은 st. Jude교회에서 시무하던 C. S. Barnett 목사를 중심으로 인보운동(Settlement Movement)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돈이나 물질생활만으론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 상태를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값싼 동정심으로 돈이나 물건을 주는 대신에 스스로 돈이나 물건을 벌어들이고 그것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기 시작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립심을 길러주기 위하여 노력하였던 것이다.
이 운동은 점차 많은 지식과 상류사회, 특히 유명한 옥스퍼드, 캠브리지 대학의 학생들과 교수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많은 대학생들과 교수들이 이 빈민지역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비위생적인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나태와 무관심에서 벗어나도록 일깨우고 생활의 개선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그들의 생활을 개선하고 나아가서는 그들이 문화적 빈곤과 소외에서 벗어나도록 주민들이 여가선용과 취미생활까지 지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C. S. Barnett 목사가 시무하던 화이트 채플지역(이스트앤드 지역 內)에 세계 최초의 인보관(사회복지관)이 세워지고 이 건물에 C. S. Barnett 목사의 친구이면서 이 사업에 헌신적으로 협력하고 이 지역의 주민들을 위하여 봉사하다가 목숨을 바친 옥스퍼드 대학교수인 A. Toynbee의 이름을 따서 "Toynbee Hall"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사회복지관이 되었으며, 이러한 사회복지관이 곳곳에 세워지고 영국 전역에 번져가면서 산업화, 도시화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실제적이고 지역적으로 해결하는데 공헌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운동은 그 후 유럽과 미국으로 퍼져나가 주요도시로 확산 되어갔고 오늘날에는 영국이나 미국뿐만 아니라 많은 복지국가 등에서 주민들의 사회적 요구를 해결하고 생활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사회복지관은 더 이상 빈민들만을 위한 기관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었고, 점차 사회복지관은 지역사회의 모든 주민들의 복지와 보다 윤택하고 풍부한 생활을 위하여 지역사회의 모든 문제를 맡아 해결하기 위한 역할을 담당하기에 이르렀다. 지역사회 주민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생활이 넉넉한 사람들의 심리적, 정서적, 문화적 요구에 이르기까지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어 지역사회 주민의 복지를 위한 핵심적인 기관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복지관이 우리나라에도 1950년대 후반에 몇 곳에 세워지기 시작하여 주로 외국의 원조를 재원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들어 우리나라가 급격하게 산업화되면서 19C 영국에서 나타났던 것과 같은 사회문제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사회복지관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사회복지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1989년에는 전국에 39개의 사회복지관이 세워졌다. 사회복지관의 중요성이 입증되어 1990년에는 그 숫자가 58개로 늘어났고, 1990년 315개, 2002년 353개의 사회복지관이 설립되었다.
2. 태동기 (1906년 ~ 1944년)
우리나라 사회복지관의 역사는 대체로 4기의 시기로 구분된다. 사회복지관사업이 처음으로 소개된 시점부터 1945년 해방직전까지의 태동기 그 후로부터 1970년대 말까지는 오늘날 사회복지관 운영의 기틀골격을 마련하고 우리 실정에 적합한 모형을 모색하던 시기인 형성기, 1980년 이후 1995년까지 사회복지관 사업이 국가에 의해 집중 지원되어 질적, 양적으로 급격히 팽창한 활대기를 거터 1996년 평가와 사업의 특성화를 위한 전문화기로 구분하고자 한다.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사회복지관 사업을 소개한 것은 외국의 종교단체였다. 한국에서 사회복지관 운동은 미국의 감리교 여선교사인 놀스(Knowles)여사가 1906년 원산에 반열방(班列房)이라 칭하는 인보관을 설립하여 여성을 위한 계몽 사업을 시작한 것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미국감리교 선교부는 그 후 이러한 인보관운동을 확산하여 1921년 서울에 태화여자관의 설립을 시작으로 개성, 춘천, 공주 등의 지방에도 여자관을 설립하였다. 당신의 보편적인 인보관은 태화여자관인데 그것은 여선교사인 마이어스(Marry Myers)가 뉴욕의 감리교선교본부에 청원하여 당시 명월관 소유의 건물에 세워졌다. 태화여자관의 주요사업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글교육, 가정방문상담, 가정위생 및 생활개선사업을 전개하고 아울러 아동건강 및 영양 사업을 실시한 것이었다. 미국 감리교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초기의 사회복지관들은 그 이름을 여자관이라고 하고, 여성을 위한 사업을 중점적으로 실시하였는데, 그것은 당시 사업을 전개한 운영 및 실무 주체가 여성들이었으며 또한 그들은 한국 여성들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회관들은 야학, 재봉, 요리 등 계몽 및 사회교육을 통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사업에 중점을 두었으며 부수적으로 어린이 보건 및 교육 사업을 실시하였다.
이와 같은 종교단체에 의한 사회관 사업과는 달리 1930년대 조선총독부에서 서울의 종로, 왕십리, 마포, 영등포 등 여러 곳에 인보관을 설치하고, 직업보도, 구호사업, 생활지도 등의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였다. 그 중 1929년 종로 5가에 세워진 동부인보관은 조선총독부 산하의 공공 사회구호기관인 방면위원회에서 주관하여 건립되었는데 주요사업으로 직업보도, 자립작업장, 생업자금의 대부, 상담사업, 아동교육 및 각종 주민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인보관들은 해방직후 미군정당국에 의하여 폐쇄되었다.
ㆍ1906년 - 반열방 : 여성을 위한 계몽사업
ㆍ1921년 - 태화여자관 : ‘태화 기독교 사회관’의 전신으로 감리교 선교부에 의해 설립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