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 로마 공화정말기의 혼란과 정치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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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럽사] 로마 공화정말기의 혼란과 정치혼란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서언

본론
□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 계속되는 정치혼란

결어
본문내용
서언
한니발전쟁 이후 도시의 지주들이 경영하는 라틴푼디움은 곡물의 재배에 소홀히 하고 상품성 있는 가축사육과 과수재배지로 변하게 되었다. 중소자영농의 몰락과 곡물의 부족은 많은 빈민을 양산하게 되었고 빈민들은 도시로마로 모이게 된다. 초기에는 각종토목공사와 로마의 팽창으로 인한 수익으로 호황기를 맞기도 했으나 나주에는 실업, 기근의 발생, 곡가의 폭등, 정치의 혼란 등으로 로마사회는 어려움에 치닫게 된다.
이러한 혼란기에 토지와 곡물배급에 관한 일련의 개혁을 추진했던 그라쿠스 형제의 정치 모습과 이후 발생하는 로마공화정의 혼란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론

□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기원전 133년 호민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로마사회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유력자들의 과도한 공유지 점유를 제한하고 공유지를 재분배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일련의 개혁을 강력히 실행하려했다. 그는 한 시민이 점유할 수 있는 공유지의 상한선을 500유게라로 정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초과한 공유지를 30유게라씩 나누어 빈민들에게 나눠준다는 농지 법안을 평민회에 제출하였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그동안의 관례를 무시하고 법안 제출 시 자문을 구하지 않고 가난한 시민에게 동의를 호소했다. 그리고 그 동의를 바탕으로 원로원의 권위를 무시하며 농지법 실행을 감행한다. 그 과정에서 동료 호민관 옥타비아누스를 면직시키고 자신의 동생과 장인이 아피우스 클라디우스를 구성으로 하는 농지분배 3인 위원회를 구성하였고, 그는 평민회를 통해 페르가뭄 왕국의 아탈루스3세가 왕국을 유증함으로서 얻은 이익의 일부를 농지분배에 필요한 자금으로 유용함으로써 원로원의 대외정책과 제정에 관한 권위와 통제권에 대해 타격을 입혔다.

참고문헌
허승일, 『증보 로마 공화정 연구』서울대 출판부
허승일, 『로마 공화정』
차전환, 『서양사 고대사 강의』「공화정의 발달과 몰락」, 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