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와 이슬람_유럽사와 이슬람_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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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슬람 제국과 기독교 세계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첫 번째 공격을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이슬람 세계는 이집트가 비잔틴 제국 해군의 요충지가 되었던 시기 알렉산드리아 침공을 성공하면서 획득하였으며, 시리아를 이슬람 세계 영역에 포함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이 지역에 대한 진출을 통해서 이슬람 세계는 동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당시, 지중해 세계는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세 지역의 망을 형성하였고, 고대 국가들은 지중해를 바탕으로 화려한 문명을 만들며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렇게 중요한 지중해의 중요성을 알았던 이슬람 세계는 이 지역을 자신들이 차지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기독교 세계에 대한 침입을 강행하게 된다.
시리아와 이슬람에 대한 무슬림의 정복 과정은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산조 페르시아와 비잔틴 제국의 격렬한 사투로 침체기로 들어섬과 동시에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한 것과 달리 육상전에서는 이슬람 세계와의 전투에서 매우 힘들었다. 또한 이슬람 세력은 종교적 관용을 베풀었던 것에 비하여 비잔틴 제국은 기독교도들을 박해하고, 그들을 경제적으로 빈곤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시기 이후에 이슬람 세력은 비잔틴 제국의 엄청난 침공을 받으며 알렉산드리아를 내주게 되지만 당시 아랍 총독 무아위야의 지휘 하에 해군력을 강화하면서 재탈환에 성공하게 된다.
이슬람 세력을 계속된 전쟁에서 성공을 이루며 북아프리카의 모로코까지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갔다. 이슬람 세력은 이 지역에서 베르베르족을 회유시킴으로써 이 부족을 중심으로 이베리아 반도까지 진출하게 된다. 이와 같은 계속된 전진에 유럽 세계가 놀랐지만, 당시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마르텔과의 전투에서 이슬람 세계가 패함으로써 더 이상의 유럽진출은 없게 된다.
제 2장 유럽 기독교세계의 대반격
10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서양은 봉건제도를 기반으로 정치와 사회가 안정기에 놓이게 된다. 또한 사회가 안정됨에 따라 농업 생산력이 증가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인구 역시 상당수 증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황권이 신장됨과 동시에 기독교 세력이 확대되면서 교황청의 영향력도 확대되어 갔다.
당시 우르반 2세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 교황권을 더욱 강화하며 그리스 정교회를 로마 가톨릭교 교회로 통합하고자 시도하기도 했다. 당시 셀주크투르크족에게 성지순례와 동방무역을 방해받았던 비잔틴 제국은 우르반 2세에게 군사 원조를 요청하였고, 이것은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1차 십자군 전쟁에서 트리폴리와 예루살렘 등에 십자군 국가를 건설하게 되지만 이들 세력이 물러난 뒤 그 존립이 위태로워졌으며 제2차 십자군 전쟁은 소아시아에서 거의 전멸을 당하게 된다. 제3차 십자군 전쟁은 이슬람의 지도자 살라딘과 영국의 리처드 1세, 그리고 프랑스의 필립 존엄왕,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대결이 이어졌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1세는 전쟁 중 익사하였고, 리처드 1세와 필립 2세는 둘 간의 불화로 인해 상황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으며 살라딘과의 조약을 통해 성지순례의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받는데 그치게 된다. 이러한 십자군 전쟁은 정규군이 아니라 평소에는 농민으로 생활하다가 전쟁이 일어났을 시 군인으로 투입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원정 전쟁, 지휘부 수뇌부간의 갈등 등으로 실패를 초래하였다. 특히 제4차 십자군 전쟁은 상업적으로 변질되면서 경제적 상황이 악화되게 된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 지중해를 다시 되찾게 되었으며 이슬람에 대한 증오감을 증대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을 혼재한 세계가 등장하게 되었다.
제 3장 이슬람세계의 재공격
십자군 전쟁 이후 이슬람 세계의 주도 세력은 셀주트투르크 제국에서 오스만 튀르크 제국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지게 된다. 당시만 해도 비잔틴 제국은 동과 북으로 나뉘어져 적국들의 계속적인 침략에 따라 국력이 급격히 쇠퇴하는 시기였다. 이슬람 세계의 권력을 잡은 오스만 투르크족은 소아시아로의 진출을 모색하게 되었는데 소아시아 지역의 그리스계 주민들은 오스만 투르크족을 크게 환영했다. 이 지역에 살던 그리스계 주민들은 오스만 투르크족에게 각종 토산물과 지역 특산품을 공물로 바치며 오스만 투르크족의 발달된 농경기술을 전수받았으며 오스만 투르크족의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게 된다. 그리고 비잔틴 제국은 이러한 안정된 세력을 바탕으로 티무르 제국을 물리치고 본격적인 침략을 감행하게 된다.
이후 예니체를 중심으로 한 오스만 투르크족은 비잔티움을 함락시키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비잔틴인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고, 그들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해주며, 비탄티움에 만들어진 그들의 문화를 모두 인정한다. 그리고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을 이스탄불로 개칭하고 수도로 삼게 된다. 이러한 오스만 투르크족의 종교적 관용에 의해 지금까지 인류는 성소피아성당과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엄청난 유물을 관람할 수 있는 것이다. 이어 오스만 투르크족은 발칸반도 대부분을 장악하면서 지중해 세력을 지배권 안으로 들여오게 된다.
제 4장 가톨릭교 신성동맹의 오스만 투르크제국 응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