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음악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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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음악과 정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세종실록을 토대로 세종시대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수업시간에 익히 들어서 알게 되었지만 세종대왕이 활쏘기에 능하고, 5차 방정식까지 풀 수 있을 정도로 수학에도 다능하며, 악기의 조그만 음의 차이까지 구분 할 수 있을 정도로 절대음감적인 음악적 재능까지 여러 가지 재능을 두루 겸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힌트를 얻어 이번 레포트의 방향을 세종시대의 음악으로 잡게 되었다.
덕이란 예와 악을 모두 갖추었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사마천과 주돈이는 언급하였다. 음악이라는 것이 한 나라의 문화 형성 및 조성에 있어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익히 잘 알고 있었던 세종대왕은 조선 전기 우리 음악의 역사에 지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조선 초기까지의 음악은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던 음악과 중국 음악이 서로 혼합되어 무질서한 상태였으나 세종대에 이르러서야 정리 할 수 있었는데, 이는 아악의 부흥과 향약의 창작을 통해서였다. 세종대왕은 박연 등으로 하여금 각종 악기를 만들게 하였고, 특히 편경과 편종을 새로이 제작하였으며, 악곡.악보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바로잡아 아악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이를 세종실록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 세종 126권 31년 12월 11일 (정사) 001 / 신악의 존폐 여부를 의정부와 관습 도감에서 논의하게 하다
임금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이제 신악(新樂)이 비록 아악(雅樂)에 쓰이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조종(祖宗)의 공덕을 형용하였으니 폐할 수 없는 것이다. 의정부와 관습 도감(慣習都監)에서 함께 이를 관찰하여 그 가부를 말하면, 내가 마땅히 손익(損益)하겠다.”
하였다. 임금은 음률을 깊이 깨닫고 계셨다. 신악(新樂)의 절주(節奏)는 모두 임금이 제정하였는데, 막대기를 짚고 땅을 치는 것으로 음절을 삼아 하루저녁에 제정하였다. 수양 대군 이유(李) 역시 성악(聲樂)에 통하였으므로, 명하여 그 일을 관장하도록 하니, 기생 수십 인을 데리고 가끔 금중(禁中)에서 이를 익혔다. 그 춤은 칠덕무(七德舞)를 모방한 것으로, 궁시(弓矢)와 창검(槍劍)으로 치고 찌르는 형상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처음에 박연(朴堧)에게 명하여 종률(鍾律)을 정하게 하였다. 연(堧)이 일찍이 옥경(玉磬)을 올렸는데, 임금께서 쳐서 소리를 듣고 말씀하시기를,
“이칙(夷則)의 경쇠소리가 약간 높으니, 몇 푼[分]을 감하면 조화(調和)가 될 것이다.”
하시므로, 박연이 가져다가 보니, 경쇠공[磬工]이 잊어버리고 쪼아서 고르게 하지 아니한 부분이 몇푼이나 되어, 모두 임금의 말씀과 같았다.
참고문헌
참고자료
세종의 국가경영 - 김영수 교수님
삼국지 - 나관중 지음, 이문열 옮김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http://sillok.history.go.kr/main/main.jsp)
세종국가경영연구소 홈페이지(http://www.aks.ac.kr/Sejong/default.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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