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화원 대전 한국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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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화원 대전 한국미술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우리나라의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그림 보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전시회를 찾았다.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조선화원대전’이 열리는 것이였다. 조선시대 회화사에서 문인화와 함께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화원화를 본격적으로 펼쳐 보이는 전시다.
전시는 ‘왕실회화’와‘일반회화’로 나뉘어 보여주며 국보1점과 보물 12점 등 110여 점이 전시되었다.
화원은 조선시대 그림과 지도를 관장하는 궁중화가로 예조 도화서에 속했다. 이들은 사진이 없던 시대 왕실의 권위와 통치이념을 시각화하는 것이 임무였다. 하지만 화원은 당시 양반계급이 아니었기에 천대 받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이중 대표작가인 김홍도, 이인문,장승업 등의 작품을 주로 만나볼수 있으며, 화원인 이들은 회화에서 일가를 이룬 인물이었으므로 구도, 필법, 색채 등이 매우 뛰어났다. 따라서 그림 전편에 넘치는 뛰어난 묘사력과 높은 회화성은 조선시대 행사 기록화의 꽃이라 볼수 있다.
전시장 입구에서 기대감과 설레임을 품고 들어섰다. 어둠이 깔린 분위기에 조명으로 작품을빛추는데 조선시대의 화원들의 화폭이 장엄하고도 위엄있게 전시되어 보여졌다.
조선왕조는 유교를 이념으로 하는 왕조다 .따라서 그 규범에 따르는 의례, 제례, 의장 행사가 많았다. 이를 세밀하게 기록한 그림이 의궤화인데 그중 대표작인 많은 그림중 나를 가장 압도한 작품인 ‘화성능행도 8곡병’이였다. 이 그림은 당시 궁중 도화서의 일류 화원인 김득신, 이인문, 장한종, 김홍도 등이 참여한 것으로 짐작되며, 1795년경에 그린그림으로 보물1430호로 비단에채색한 작품이다.
그림은 8폭병풍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화성성묘전배도(華城聖廟展拜圖)’, ‘낙남헌방방도(洛南軒放榜圖)’,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 ‘낙남헌양로도(洛南軒養老圖)’,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 ‘득중정어사도(得中亭御射圖)’, ‘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 ‘한강주교환어도(漢江舟橋還御圖)’ 등이다.
크기도 크기지만 섬세하고도 뛰어난 필법 행사의 분위기를 현장감있게 그대로 전달 할수 있는 이 그림에 매료 되고 말았다. 뭔가에 홀린 듯 매료된 이그림에 이끌려 하나하나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자 조사해보았다.
정조가 혜경국 홍씨와 함께 사도세자의 능이 위치한 화성에 행차 했을 때의 각종 행사를 그린 기록화, 차비 대경화원이 그린 이 작품은 원근법과 투시도법을 활용한 다양한 구도와 풍속화적 요소 사용하여 분위기를 전달하였다.
당시 펼쳐진 왕실 행렬의 진면목을 이렇게 생생하게 볼 수 있다니 놀랍고, 고위직이 타고 다니던 외바퀴수레가 달린 초헌 가마와 4괘가 그려진 태극기와 오방색 황룡기도 보이지만 더 자세히 보면 막걸리 파는 아낙도 엿장수도 발견할수 있었다. 또한 밑에서부터 위로 훓어서 보니 사람의 눈, 코, 입의 형태가 점점 없어지는 걸 볼 수 있다.
1폭인 ‘화성성묘전배도(華城聖廟展拜圖)’는 정조가 화성행궁에 도착한 이튿날(11일), 화성 향교에서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에 나가 참배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묘시에 행국을 나선 정조는 동부승지 이조원에게 다음 행사인 문무과 별시 준비를 철저히 할 것을 지시하고 말에 올랐다. 화성향교는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을 거쳐 서남쪽을 약2킬로미터 떨어진 팔달산에 있다. 때는 윤2월 아직 겨울 취가 다 가시지 않았으나 봄을 느낄만큼 주위의 초목이 풋풋하여 개혁을 향한 정조의 푸른 꿈을 대변 하는 듯보였다.
정조가 참배한 자리는 공자의 신위를 모신 대성전으로 계단 위 오른편에 설치되어있다. 그림에는 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어진이 아닌 이상 왕의 형사을 그림 속에 감히 그려 넣을 수 없는 당시의 엄격한 법도에 따른 것 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