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도자기의 각 나라별 특징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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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도자기의 각 나라별 특징 보고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우리나라 전통 도자기의 발달 과정을 살펴보면 긴 세월이 흘러서 조금씩 변화 발전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고려시대의 청자로부터 조선시대의 분청사기, 백자로 발전되어 오는 과정이 거의 1000년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도자기를 일반적으로 나누어 본다면 고려시대의 청자와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고려 시대의 지배 계층은 보다 많은 청자의 필요성을 느낀 이후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서남해안 일대에 청자요지를 유치하게 된다. 초기 청자를 거쳐 11세기에 이르러 문양과 색상이 보다 진전된 청자가 선을 보이게 된다. 12세기에는 중앙 귀족들의 문화적 욕구와 물질적인 풍요가 청자 발전을 절정에 이르게 했다. 이 시기에 상감 기법이 생겨나고 문양도 정교해지고 비색 또한 맑고 투명해진다.
14세기 중간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분청사기는 대중적인 도자기로 발전하게 된다. 청자가 중국에서 받아들여져 우리만의 독특한 상감 청자 기법을 개발해냈듯, 분청사기 또한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도자기로 발전했다.
분청사기를 청자가 쇠퇴하면서 백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발생한 도자기로, 청자보다 격이 떨어지는 도자기로 보는 의견들도 있지만, 청자가 상감 기법으로 인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로 분청 사기 또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을 만큼 다양하고 자유스러운 멋을 개발했다.
조화나 박지기법. 분을 바르고 그 위에 문양을 넣거나 문양의 여백을 긁어내는, 분을 바른 붓 자국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귀얄, 기물을 분에 담그고 분장하는 덤벙 기법 등도 우리 민족 정서를 대변하는 새로운 표현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16세기 후반 부터는 분청이 점차 줄어들면서 백자로 자연스럽게 도자기의 큰 흐름이 이어진다. 백자의 발달은 검소하고 소박함을 추구하는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양반 계층의 사상에 따라 간결하고 소박함을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문양도 중국의 화려한 색상이나 문양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극히 제한된 색으로 간결 단순하게 표현을 하였다. 특히 중국의 침략에 대한 반 청나라 정서가 이 시대의 도자기에도 잘 나타나 있다. 청나라 도자기의 다양한 색상과 화려한 표현의 영향을 거부하고 더욱 검소하고 절제된 표현의 순백자가 발달하였다.
중국
기원10세기부터 13세기초에 이르는 당나라와 송나라시기 중국의 도자기제작기술이 계속 발전하였다. 중국의 유명한 도자기인 당삼채가 바로 이 시기에 산생된 칼라 도자기 공예품이다. 이는 주로 진흙으로 만든 도자기원형에 먹인 천연색유약이 구워내는 과정에 화학적인 변화를 발생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당삼채는 중국 국화와 조각 등 공예미술의 특징을 채용하여 붙이고 조각하는 등 형식의 장식도안으로 한 도자기그릇에 동시에 붉은색과 푸른색. 흰색유약을 사용 하였다.
이렇게 3가지 유약을 발라 고온에서 구워내면 3가지 유약이 서로 어울려 3가지 색갈이 여러가지 색깔로 변한다. 원색과 복색으로 된 이런 도자기는 사람들의 눈에서 여러가지 색깔로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당삼채유색의 특징이다.
명나라와 청나라시기는 중국 도자기생산의 전성기로서 도자기생산의 수와 질이 최고봉에 이르렀다.
일본
일본에서 오랫동안 모든 사람의 꿈은 조선이나 중국과 같이 자기(磁器)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소망은 결국 처참한 7년간의 전쟁 끝에 성취하게 되는데, 이른바 ‘도자기 전쟁’이라 일컫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치르면서 자기의 시대를 열게 된다. 그 후 한반도 침략 정책이 큰 계기가 되어 일본의 규슈 일대에는 도래해 온 많은 귀화 도공이 각지에 요를 쌓았다. 조선에서 데려온 도공인 이삼평에 의해 최초로 자기를 만들게 된다. 백자광을 발견한 이삼평 일파는 고향에서의 제작경험을 살려 자기요를 일으킴으로서 기형, 문양 모두 다른 독자적인 청화자기를 완성하였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초기의 청화자기 양식은 조선풍 이었다고 하는 것이 연구자들의 정설로 정착되어 있다. 그 후 메이지[明治]시대에 들어와서 독일의 바그너가 일본에 들어와 새 기술을 가르치고, 일본인도 해외에 유학하여 유럽의 새로운 도자기 제조기법을 배워 가지고 귀국함으로써 석탄을 연료로 하는 새로운 양식의 가마, 석회를 이용한 유약, 석고틀에 의한 기계물레 성형 등을 시작하게 되어 서양풍의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 후에도 꾸준히 외국의 기술을 도입하는 데 주력하여 현재에는 서양식기의 주생산국으로 발전하였다.
베트남
베트남이야말로 두 눈을 부릅뜨고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개성있고 독창적인 도자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라다. 이 세상에서 도자기를 제대로 생산해낼 수 있는 나라는 베트남, 한국, 그리고 중국 등 손에 꼽을 정도인 것을 감안한다면 베트남의 도자기의 세계적인 위상을 짐작하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최근 ‘호아빈’ (Hoa Binh), ‘박성’ (Bac Son), ‘하롱’ (Ha Long), 등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베트남 전역에서 도자기가 사용되어왔다는 것이 유물을 통해 알려지자 그동안 중국으로 쏠리고 있던 세계의 눈이 베트남으로 급격히 옮겨지고 있다. 문양과 기술 등 모든 면을 종합해볼 때 그 역사와 가치에 있어 결코 중국 도자기에 뒤지지 않는 이런 놀라운 작품들을 통해 베트남 장인들의 예술적 감각과 손기술이 얼마나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트남은 54개 민족이 모여 한 나라를 이루었듯이 하노이, 탄호하, 박닌 등 각 지역은 그곳의 토양과 지형, 그리고 민족성에 부합하는 제각기 독특한 도자기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세기 초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베트남 도자기 기술에 일대 혁신을 가져다준 ‘빙호아’ 도자기는 그동안 전국의 각종 문양과 무늬를 수집하여 종합한 덕에 그 표면이 화려하고 무늬가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눈부신 흰색 법랑질 도자기, 붉은 색, 자주빛, 황금색, 청자 등 이곳의 도자기는 현대 도자기기술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베트남 청화백자는 중국 원(元)대와 명(明)대의 청화자기의 영향으로 기형과 문양 등은 중국의 영향을 반영하지만, 문양구성과 전체적인 분위기는 중국풍과 다른 특색을 보여 준다. 베트남 도자기는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동지역 까지 수출되는 등 중국도자기와 함께 무역도자로서 높은 명성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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