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기대수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수준 낮은 당파 싸움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적 무관심의 증대는 기존 정치세력이 정책의 방향을 자기 마음대로 끌고 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매우 해롭다.
그런데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은 기업의 사회 지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현대 사회에서 노동계급의 갈등적 역할 강조
둘째- marshall 19세기 노동계급이 성취한 실질적 진보를 자본주의 시장에서 대한 노동계급의 정치적 ‧ 사회적 반발의 결과로서 명백히 인식한다.
셋째- 시민의 자유로부터 복지에 이르기
대통령탄핵이 총선에 미치는 여러 가지 영향을 ‘탄핵풍’, 정동영의장의 노인폄하관련발언의 여파를 ‘노 老풍’, 박근혜의원이 한나라당대표가 된 이후 나타난 변화를 ‘박풍’, 추미애의원이 민주당선대위원장이 된 이후 광주에서 삼보일배를 하고난 뒤 나타난 변화를 ‘추풍’이라고 명명하며
시민들은 5월 4일을 시작으로 국가정보원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5월 4일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시위가 열렸고 이들은 18대 대선의 공직선거법 위반 공소시효가 끝나는 6월까지 매주 토요일 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장에서는 국정원 선거정치개입에 따른 국가정보원 개혁 과제에 대
민주화 운동 세력도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박정희를 잊어버렸다.
한 편, 탄핵 직후 위기에 몰린 수구세력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은 독재자의 딸 박근혜였다. 연좌제를 반대해온 입장에서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인 박근혜가 역사적 인물 박정희에
‘탄핵반대운동’,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등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정치참여 사례들이 주목을 받아 왔다. 정부와 정치인들도 인터넷 상에 수시로 정책을 홍보하고, 인터넷 포럼 등을 통해 시민들과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쌍방향적인 정치커뮤니케이션의 장을 만들고 있다.
대통령이 취임 후 보여준 정치적 행보는 국민들의 기대에 들어맞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장점으로 보였던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밀어 붙인다’고 “○○상조정부”라고 조롱받고 있으며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웠던 경제 살리기는 소수 부유층과 기업들만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면서 반역향의 이미지들이 내재화 되어버렸다.
특히 호남인의 입장에서 이승만정권의 등장과 반공이데올로기의 강화는 중요하다. 일제 시대 가장 유력한 정치집단이었던 김성수, 송진우, 김병로 등 호남그룹의 정치적 패배는 6.25전쟁을 이용해 자기에게 불리한 정치적 기반을
시민단체도 총선사이트를 개설해 부패정치인 추방운동 등을 벌었다. 그러나 17대 총선에서 정당 및 후보자, 시민단체 등의 인터넷 선거전략은 크게 빛을 보지 못했고, 민간측면에서 정치웹진과 정치사이트가 크게 증가하면서 이들이 선거국면을 좌우했다.
이 같은 원인은 탄핵이라는 정치적 맥락의
시민사회단체들의 구호보다 훨씬 생동감과 친밀감 있는 구호들이 만들어지고, 피켓의 형태나 종류도 훨씬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2)'생활정치'의 발견
담론과 일상이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삶의 정치 혹은 생활정치 ‘현장에 나가보니 이렇더라, 관리에 이런 문제가 있었더라,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