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살수대첩은 612년인 고구려 영양왕23년에 고구려를 침공한 수(隋)나라 양제와의 2차 전쟁에서 수를 격퇴하고 대승리를 거둔 싸움이다. 수를 격퇴하는데 큰 영향을 준 살수대첩을 이끈 장군이 바로 을지문덕이다. 을지문덕에 대해서는 역사적 기록이 많이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그가 활약한
고구려는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수나라에 사신을 계속 보내고는 있었지만, 다음 공격 대상이 고구려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한편, 고구려에서는 광개토대왕 이래로 동북아시아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당시 요동지역을 포함한 만주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광대한
하는 일원적 국제 질서 등을 구축하려고 했다. 이로써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고구려와의 충돌은 결국 불가피한 것이었다. 결국 298년 2월 고구려의 선제공격을 시작으로 하여 612년과 613년 그리고 614년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서 고구려와 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에 관한 문서들을 살펴보면서 그 내용이 100% 3인칭시점에서 기록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이지 않나 생각된다.
역대 한반도 국가들이 겪었던 그 많은 전쟁 중에서 규모면과 전후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전쟁은 6.25 사변, 그리고 수, 당나라와 고구려 사이의 전쟁일 것이다.
선공, 수나라 고구려를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전염병과 해전에서 패배, 많은 물자와 병기 노획으로 수나라는 화친을 함(598년)
612년 수 양제의 1차 침입 (살수대첩) 수나라 패배
613년 수 양제의 2차 침입 (요동성 전투) 수성전략으로 이김
614년 수 양제의 3차 침입, 서로의 전의 상실로 화친으로 끝남
3. 고구려 vs 당나라
618 당나라 등장.
- 초기의 고구려와의 관계는 우호적 (포로 1만명 송환)
- 연개소문의 등장 이후 당이나 신라에 강력한 대외 정책을 시도
- 신라에 대한 공격 중지를 권하는 당의 간섭 거부
- 당 태종 즉위 이후 고구려에 대한 압력 행사 → 고구려 침략 (645)
안시성 싸움
1.머리말
고대 삼국시대의 지도를 보게 되면 커다란 고구려의 영토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어릴 적부터 영상매체나 책을 통하여 알게 된 광개토대왕 얘기가 떠오르며 수업시간에 본 적이 있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말을 타며 활을 쏘는 고구려인의 강인함이 생각난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영토
1. 머리말
天下觀이란 온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그 가운데 자기 나라 위치가 어떠하며 나아가 인접 집단과 비교해 자기 족속의 특성이 어떠한가에 대한 인식을 담은 것이다.
5세기는 고구려가 대내적ㆍ대외적으로 활발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고구려인의 천하관을 살펴본다는 것은 이
위진남북조 시대가 끝나고 북방족인 북조는 중국을 평정한 후 수나라를 건립하였다. 수 문제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의 영토를 염탐하였고 그 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사신을 보내 지형을 알아보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고구려 또한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수나라의 동태를 살피도록 했으며 수 문
제약을 극복하고 국가적 체제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춥고 험준한 산간지대에 위치하던 고구려나 태백산맥 동쪽과 해안선에 떨어져 있어 고립된 위치에 있던 신라 등은 적극적인 대외 전쟁과 투쟁을 거쳐서 보다 좋은 영토와 거점 확보를 통해서 국가를 형성하며, 발전시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