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요약][고대사] 5세기 고구려인의 천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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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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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천하관 의식
3. 주변국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
― 조공ㆍ수천ㆍ화이
4. 동아시아와 고구려인의 천하 ― 황제ㆍ가한ㆍ대왕
5. 천하관과 동류의식
6.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天下觀이란 온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그 가운데 자기 나라 위치가 어떠하며 나아가 인접 집단과 비교해 자기 족속의 특성이 어떠한가에 대한 인식을 담은 것이다.
5세기는 고구려가 대내적ㆍ대외적으로 활발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고구려인의 천하관을 살펴본다는 것은 이 시기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일면이 될 수 있겠다. 먼저 5세기 고구려인이 자기 나라의 성격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었나를 살피고 인접국과 고구려와의 관계의 성격을 어떤 식으로 규정하였는지 와 나아가 동아시아 세계 속에서의 고구려국의 위치에 대한 고구려인의 인식을 이해하고 나아가 三國民 간의 관계를 고구려인이 어떻게 의식하고 있었겠는가 에 대한 추정을 해보고자 한다.
2. 天孫國 意識
5세기 고구려인은 자기 나라가 天下의 중심이라고 여겼다. 고구려인의 천하관은 중국인의 그것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음은 분명한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인의 천하관의 기저는 전통적인 東明神話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라 양자간에 차이가 나는 점 또한 적지 않은데 天에 대한 개념이 그러하다.
중국인의 천하관에서 天은 時空을 뛰어넘어 모든 이에게 작용하는 보편적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여겨졌다. 天帝의 의지를 뜻하는 天命은 立國의 정당성과 君主권력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로 강조되었고 이 天命의 소재 여부로 放伐을 정당화하여 왕조 교체를 합리화하였다. 天子는 天의 命을 받아 통치를 행하는 자이니 자연 ‘天命을 받아’ 재위 중인 군주는 항시 天子라 칭하였던 바이다.
그에 비해 陵碑의 天帝는 왕실의 祖上神의 모습이었다. 고구려왕은 혈연 제보로서 天帝와 연결 지워졌다. 즉 天帝―해모수―주몽으로 이어져, 天帝와 고구려 왕실을 연결하는 혈연 계보 관념이 더 진전된 모습을 나타내었다. 이렇듯 5세기 고구려인의 천하관에서 天은 인격신인 天帝이었고 그 천제는 어디까지나 왕실의 조상신으로 여겨졌다. 또한 왕뿐 아니라, 왕족도 신성한 天孫族으로 관념화되어, 그 배타적인 신분적 우월 의식의 기저가 되었을 것이다.
5세기의 陵碑와 墓誌에선 東明傳承의 내용이 계루부 왕실의 시조인 주몽의 전승으로 고착화되어 나타나, 현 황실과 왕권의 초월적 권위와 위엄의 상징으로 강조되었다. 이는 강력한 왕권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영역국가체제가 진전되어 가는 정치적 상황의 전개와 연관되어져 나타난 변화라 하겠다. 나아가 고구려 조정은 각지에 주몽과 河伯女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을 세워 제사지내게 하였다. 주몽 숭배 신앙이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어느 정도 믿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구려 말기까지는 고구려 영내의 주민들간에 상당히 널리 퍼져나갔을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이는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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