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사상(華夷思想)이라고도 부른다.
인 자문화 중심주의적인 사상을 유지해오며, 중국문화가 세계에서 최고이고, 모든 세계는 중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중국의 주변국들은 모두 오랑캐라고 생각하며 업신여겼고, 오만방자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華夷의 義理를 공허한 것으로 인식하였고, 利益이 된다면 화이을 불문하고 수용해야 된다고 주창하였다. 正德에 앞서 利用厚生을 강조했던 실학파에서도, 이용후생을 위해 財利의 생산을 필연적이요 정당한 것으로 평가하고 그 효과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경향성은 개화파에 이
화이관(華夷觀)을 완벽하게 포기하지 않는 한 그 이류를 이적성, 즉 청나라의 고유한 근본적인 속성으로부터 도출해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청나라가 주화의 문물을 빼앗아서 의지하고 있는 논리를 만들어 내었다. 즉 ‘이적’인 청나라 자체와 ‘중화의 남은 문물’인 청나라의 문물을 구분하는 방식
화이(華夷)관계에서 나타난다. 라는 이론적 바탕이 유교의 사상적 정통성과 합리성을 주장하였다.
고려 초나 조선 초의 정치적 상황으로 볼 때 군신간의 수직적 위계질서 확립은 큰 과제였으며, 이러한 큰 과제를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불교나 도교보다도 이질적인 위계질서를 학문적으로 합
화이사상(華夷思想)을 내세웠다. 그리고 이 사상은 중국인의 세계관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력을 주고 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역사가 황화문명이 시작됨과 더불어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는 자신들 특히, 한족들의 민족적
1. 중국인들의 의식형성에 바탕이 되는 사상
(1) 中華思想(중화사상)
- 중국에서 나타난 자문화 중심주의적 사상으로 화이사상(華夷思想)이라고도 한다.
- 中華民族優越主義(중화민족우월주의) :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자 우주의 중심. ‘仁’이나 ‘德’으로 무장된 중화사상이 ‘法’이나 ‘力’
화이사상(華夷思想)에 입각하여 러시아 역시 외국의 야만인 취급을 하고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의 사절단은 세계의 중심인 청의 황제에게 3궤 9고(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배례 의식)로써 조공을 해야만 했고, 청의 건륭(乾隆, 1736~1796)황제 시대에는 유일한 무역루트
화이관(華夷觀)에 기초로 한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 즈음 일본은 열강의 일본의 접근과 중국의 아편전쟁의 굴욕을 묵도하면서 막번체제의 개벽을 통해 템포(天保)개혁 등을 시도하였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결국 1853년 페리제독이 이끄는 미군함의 두 차례에 걸친 함포외교에 의해
화이(華夷) 사상이라고도 한다.
춘추 전국 시대를 거쳐 진?한?당대에 이르러서는 중화사상이 극을 이루고 있다. 그들의 문화유산이 충분히 그들이 중화사상을 가지게 끔하고 있는데 진의 만리장성, 한의 서역길(실크로드) 개척, 당의 세계 제국이 그것이다. 특히, 한과 당은 세계적인 대제국으로서 한
화이사상(華夷思想)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한민족(漢民族) 특유의 민족의식을 표현한 것으로, 중화(中華, 華夏)라는 고도의 문화를 가진 한민족에 대하여 주변의 이민족을 이적(夷狄;오랑캐)이라 하며 문화수준이 낮은 야만인으로 간주하고, 이(夷)는 화(華)의 문화를 추앙하고 화에 복속해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