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 북학파의 특징- 박지원, 박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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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실학 북학파의 특징- 박지원, 박제가
1.북학
‘북학’이란 말은 맹자가 “진량은 초나라 사람이다. 그는 북쪽으로 중국에 유학하여 북방의 학자들도 그보다 나은 사람이 별로 없다”라고 말 한 것을 박제가가 인용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북학’의 정신은 메마르고 빈곤하였던 조선후기 사회를 구제하려는 것이다.
1-1북학의 형성
청나라의 중국 지배가 100년이 넘어간 18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극소수의 재야 인물을 제외하면 조정의 관료나 처사(處士)적 위상을 갖고 있던 인물들은 북벌(北伐)론의 비현실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북벌론의 의미와 효종의 정신을 기념하면서 북벌론을 역사화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북벌론에 대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이 전대에 비해 점점 더 확산되고 있었다. 명나라에 대한 은혜와 청나라에 대한 원한은 시효가 지난 것으로 인식하기도 하였고 청나라를 정통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명나라보다 청나라에게 받은 은혜가 더 크다는 입장도 나타나기 시작 하였다. 청나라를 이적 중의 중화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나 청나라가 문명으로 잘 다스리기를 바라는 심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변화된 분위기의 산물 이였던 것이다. 17,18세기 북벌론(北伐論)의 추이와 북학론(北學論)의 대두, 허태용(Tae Yong Huh),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69권0호 (2010), pp.373-418
이제 조선의 지배층 인물들에게 더 중요한 문제는 청나라의 몰락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보다는 청나라가 오래도록 번성하고 있는 이유를 찾아서 설명하는 것 이였다. 하지만 조선 지배층들이 전통적인 화이관(華夷觀)을 완벽하게 포기하지 않는 한 그 이류를 이적성, 즉 청나라의 고유한 근본적인 속성으로부터 도출해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청나라가 주화의 문물을 빼앗아서 의지하고 있는 논리를 만들어 내었다. 즉 ‘이적’인 청나라 자체와 ‘중화의 남은 문물’인 청나라의 문물을 구분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명나라의 멸망은 청나라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자초한 것으로 해석 되면서 청나라에 대한 복수의 필요성은 더욱 약화되었다. 청나라의 문물이 사실상 중화의 남은 문물이기 때문에 도입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북학론은 소수의 인물들에 의해서 18세기 후반에 돌출적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17세기 후반 이해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도출 될 수 있었다고 보인다. 위와 같음
2.박지원
2-1생애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년, 영조13년~1805년, 순조 5년)은 깊이 있는 사유로 시대를 통찰하며, 탁월한 문장으로 고루한 관념에 매몰된 양반지배층을 날카롭게 비판한 조선후기 문인이자 실학자의 일원이었다. 활발한 교우관계와 학맥을 유지한 ‘연암그룹’의 활동상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그는 인간적인 면모가 가득했던 인물이었다. 일찍부터 사회현실에 눈을 돌려 극복해야 할 과제 앞에서 일생을 고민하였던 지식인이었다. 그는 나이 50에 이르러 뒤늦게 벼슬길에 올랐으며 길지 않은 시기였으나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목민관으로서 최선을 다하였다.
연암은 평생에 자기 소신을 피력한 시, 소설, 수필, 정론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과 글을 남겼다. 이는 조선의 실학사상과 문학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연암은 문학작품을 통해서 18세기에 당면한 사회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사회신분제의 모순 구조를 신랄하게 비판, 풍자하였다. 이후 목민관으로서 재임하면서 작성한 농서와 정론을 통해 조선 현실의 사
회·경제 현실을 분석 비판하였고, 상공업 및 농업 기술의 발전과 토지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연암 박지원의 사회,경제 개혁론에 대한 일고찰, 오영교(Young Kyo Oh), 한국사회역사학회, 16권1호 (2013), pp.137-164
2-2 박지원의 사상
연암은 평생토록 백성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이용후생의 학적수립과 정책적 실현을 갈망하였다.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에 거부하지 않았고, 결연한 의지로 시대적 소임을 묵묵히 수행해 나아갔다. 차별적인 신분제의 개혁과 농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농업기술 및 토지 분배 방안의 제시는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위와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