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궤 도서란?
조선왕조시대에 왕실 및 국가의 각종 행사에 대해 발의 및 준비 과정, 의식 절차, 진행, 행사 유공자들에 대한 포상 등의 사실을 정리한 기록이다. 파리 소재의 위 의궤들은 제작시기가 1630년(인조8년)에서 1849년(현종15년)에 걸친 것들로 조사되었다.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랜 의궤는 160
도서들 가운데 항구보존의 가치가 있는 책들을 별도로 보고나하는 외곽서고로서, 1781년(정조 5) 3월에 강화도의 행궁지에 설치되었다.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儀軌)를 비롯해 총 1000여권의 서적을 보관하였다. 프랑스의 도서 침탈이 있던 당시 외규장각의 도서 현황은 다음과 같
도서들 처럼 조선왕조의 국가적 상징성을 지닌 것들이라면 매매나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원생산지로 되돌려져야 한다.
파리 국립도서관의 한국 외규장각도서들은 반출과정부터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 많다.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입한 사건(丙寅洋擾) 자체의 불법
Ⅰ. 들어가는 말
역사에 대한 관심은 곧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우리에 대한 나아가 시대에 대한 관심이라 고 할 수 있다. 역사를 그저 과거의 것으로 치부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한 개인이건 국가이건 간에 발전을 거듭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 는 역
도서관 사서들과 문화재 관련 관료들이 협상대표로 나섰으나. 한국은 이해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서울대 규장각측은 배제되고, 정부에 의해 선임된 협상 당사자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즉, 1기의 과정에서는 한국측에서는 한국정부와 서울대 규장각측, 협상당사자와 이해당사자간의 내부협상이
서론
무엇이 문제인가?
이해의 한계성
사회문화 -> 계승된유문-> 문자그림-> 문화의차이
국가적 상징성을 가진 의궤를 생산지로 되돌려 원상회복시켜 그 가치를 발현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최초 반환 협상 합의의 계기
병인양요 도서 피탈 경위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
1866년 10월 11일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서들이 명백한 예이다. 그 고서들은 원래 강화도 외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인들이 약탈한 것이다. 고속철도 건설을 계기로 고서 반환 협상이 시작되었으나 프랑스측의 비 협조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가 등가 교환 방식이라는 원칙아래 협상이
한국의 수많은 문화유산이 흩어져있는 가운데, 지난 2006년 조선왕조실록 반환을 계기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반환 요청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도서에 대한 반환을 요구해 프랑스 측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외규장각도서 반환 요청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는 바 외무부는 1992년 2월부터 프랑스 외무부와의 접촉을 시작 하였고, 동년 7월에는 고서의 목록을 전달하는 등 외교경로를 통한 구체적이고도 공식적인 반환요청이 진행되었고 때마침 한국의 고속전철사업 참여에 혈안이 된 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