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의 소재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한국의 역사학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넓게는 최근의 동남아 신흥공업국가에서 보여지듯이 세계사적으로 과거 피식민국가들이 식민지하에서 근대화되었다는 것을 통칭하는 것이지만, 좁게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나라가 식민지하에서 근대화되어갔다는
Ⅰ. 서론
과거 민족 사학의 지상 과제는 식민사학의 극복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식민지 시대는 우리 민족에게는 철저한 암흑기여야만 했다. 그 어떠한 발전도 진보도 없는 후퇴만을 거듭한 역사의 오점으로 식민지 시대는 회고되야 했다. 유구한 우리 역사에 그 오점만 없었다면 훌륭하게 근대국가
1. 서론
광복 이후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주로 '수탈'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였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개발 및 근대화'로 보는 관점인 식민지 근대화론이 대두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로써 우리의 식민지 시대를 '수탈'의 관점에서 볼 것인
제 1 절 문제의 제기
1960년대 초 본격적인 경제개발에 착수한 이래 한국은 연평균 10% 내외의 고도성장을 30 여년간 지속해 왔다. 특히 한국은 높은 성장률뿐만 아니라 공업부문의 급속한 비중증대와 철저한 대외지향적 성장전략을 추구하였다. 그런데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과 성공적인 공업화에 정부
식민지지주제의 창출, 회사령을 통한 자생적인 부르주아층의 억압이라는 조건 속에서 이들을 예속적인 지주, 자본가로 성장시켰던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종래 대한제국의 고급관료층, 총독부의 군수들이었고, 그 가운데 일부는 지방에 발달하였던 금융업의 주주들이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한상
식민지지주제의 법률적 제도적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토지정책이었다면 산미증식계획은 식민지지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식량증산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농업개발정책이었다. 이러한 정책의 실시 결과 조선에 식민지지주제가 형성 발전되었으며, 일제는 이 제도를 매개로 농업을 개발하고 농민을 수
식민지 지주로 개편하여 식민지통치와 수탈의 주구로 삼았기 때문이다. 또한 식민지지주제는 이후 일제의 식민지 농정의 본격적 전개에 따라 더욱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1) 농민의 존재형태
일제하 농민의 생활은 식민지 농업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일제는 1910년대에 토지조사사업(1912~18), 1920년
식민지지주제의 강화
제 1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서는 자본의 급속한 축적으로 말미암아 농민의 대량 이농과 도시 노동자의 급증이라는 사회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일시적으로 식량수급을 왜곡시켜 1918년 일본 각지에서 쌀을 요구하는 도시민중의 폭동이 일어나기까지 하였다. 국내에서 쌀 부족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