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충 등 명장들이 그를 따랐으며, 제갈양·방통·서서 등의 참모들이 그를 도왔다. 그러한 여러 장수들의 도움이 가장 세력이 약했던 촉나라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유비의 리더십으로 또 하나 주장되는 것이 ‘지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비는 권모술수가 부
못했다고 하여 그에게 임기응변의 장략이 부족했다는 평가는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 반론이 존재한다. 제갈량은 1차 북벌 당시 조운 조운(趙雲, 168년 ~ 229년)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무장이다. 자는 자룡(子龍)이다. 관우(關羽), 장비(張飛), 황충(黃忠), 마초(馬超)와 더불어 오호대장군으로 불렸다.
황충, 마초 등의 맹장들과 제갈공명, 방통, 서서, 마량, 강유 등의 모사들이 모여들어 촉나라를 세우는 과정이 『삼국지연의』의 중심서사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너무나도 잘 알려진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도원결의, 삼고초려, 오관참장, 장판파 싸움, 적벽대전 등등. 허나 후세의 연구자들은 대부분
황충기, 『가곡원류에 관한 연구』, 국학자료원, 1997; 신경숙, 『歌曲源流』의 소위 ‘관습구’들 어떻게 볼 것인가?, 『한민족어문학』41집, 한민족어문학회, 2002.; 문주석, 가곡원류 연구, 영남대 박사학위논문, 2005.; 황인완, 『歌曲源流』의 이본 계열 연구, 고려대 박사학위논문, 2007.; 강경호, 가곡원
황충기(1999), 『여항인과 기녀의 시조』, 국학자료원, p. 95.
황진이 또한 기녀로서 다른 기녀와 삶의 조건은 다를 바가 없었다. 그가 다른 기녀에 비해 총명하고 예인적 자질과 미모를 겸비했다고 해서 그 삶의 본질적 속성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럴 수록 더욱 그 삶의 불구성을 두드러지게
황충과 함께 조자룡은 촉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러나 삼국지에서는 그의 뛰어난 성과나 업적에 대해서는 크게 나오는 부분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조자룡은 매우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에 비해 그리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
황충, 엄안, 방통 등 당대의 이름을 떨치던 인물들이 모두 유비를 받들고 따랐던 것도 그러한 그의 부드러운 리더십, 섬김의 리더십에 반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비가 부드러운 성품과 덕으로 사람들을 대했다면, 제갈량의 경우에는 치밀한 계산과 논리, 이성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
황충 등 다른 인물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매력을 느끼게 되었으며, 또 그 중에서도 제갈량이야말로 삼국지에서의 진정한 주인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삼국지에서는 내로라하는 용맹스러운 장수들과 군사(軍師)들이 많았지만, 제갈량만큼 주변의 정
한랭기후와 자연재해
동아시아 기후변화 추세
10~11세기 온난기
12세기 한랭기
일시적 소강기
13세기후반~14세기 한랭기 (고려 후기)
자연재해의 종류
한해(가뭄)
평균 7년에 한번
중세동안 고르게 발생
황충(벌레에 의한 피해)
25회 (고려후기 위주로 많이 기록됨)
상해(서리)
중세에 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