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마정벌 등 신 시장 개척(6.4%), 음악을 장려한 감성 경영(1.6%), 측우기·해시계 등을 발명한 과학기술경영(1.2%)이 그 뒤를 이었다.
나는 이 중 인재경영에 집중해 보려 한다. 세종의 인재사랑은 특별했다. 인재를 찾아 다녔고 동시에 인재를 만들어 냈다. 또한 자신의 아들을 뛰어난 군주로 만들기 위해
번째 임금 세종. 세종대왕은 가히 조선의 가장 훌륭한 임금이라고 이야기 될 만큼 훌륭한 업적을 많이 쌓았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외 정치뿐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등 조선사회 전반에 거쳐 많은 기틀을 잡고 정책을 정비했다. 또한 중앙 집권 체제를 단단히 하였고 왕실 불교를 장려하여 불교의 발달
번에 걸쳐 건의하였다. 그리고는 끝에 허락받아 우리 나라에서 화약과 화약무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1377년 10월부터 시작하였다.
화통도감에서 제조된 각종 화기들은 모두 18가지로, 이 중에서 총포의 종류는 대장군(大將軍)·이장군(二將軍)·삼장군(三將軍)·육화석포(六火石砲:완구의 일종)·화포
조선과의 국교가 절실히 요구되었다. 특히 쓰시마는 조․일전쟁 이전 경제의 상당 부분을 조선에 의지했던 만큼, 조선과의 국교재개는 섬 전체의 사활이 걸린 일이었다. 반면 조선은 피로인 송환의 필요성과 함께, 북쪽의 여진족이 점차 강성해짐에 따라 일본과 평화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④통신사
▶후소샤 역사교과서 서술
“막부는 이에야스 때 쓰시마 소끼를 통해 히데요시의 출병으로 단절되고 있던 조선과의 국교를 회복했다. 양국은 대등한 관계를 맺고 조선으로부터는 장군이 바뀔 때마다 통신사라 불리는 사절이 에도를 방문하여 각지에서 환영받았다”
⑤ 한국병합- 유무
쓰시마 난류가 교차해 플랑크톤이 풍부하다. 이에 따라 회유성 어족을 중심으로 좋은 어장을 형성한다. 어민들의 주요 수입원인 연어ㆍ송어ㆍ대구를 비롯해 명태ㆍ꽁치ㆍ오징어ㆍ상어 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국내 전체 오징어 어획량 중에서 독도 주변 수역(대화퇴어장 포함)의 어획고 가 60% 이상을
번 주목받으며 일본근대화의 시대정신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근세말기의 사상가로 명성을 날린 요코이 쇼난과 사쿠마 쇼잔 등은 ‘서양의 재=서양의 과학기술’은 받아들이더라도 ‘일본의 혼=일본전통의 도덕이나 정신’은 유지해야 한다는 이른바 ‘화양절충’의 방식을 주장하며 일본의 변화를
대마도, 일기도(壹岐島), 축전주(築前州), 남도(藍島)를 거쳐 적간관 (赤間關)에 도착하여 머묾.
‧ 제 3 권 (동경에서의 관경 소감 368구) : 정월 초하루 적간관의 명절 이야기로부터 오 사카, 교토, 와다오라, 시나키와를 거쳐 에도(江戶)에 들어가 사행(使行)의 임무를 마침.
‧ 제 4 권 (
쓰시마정벌로 일시 폐쇄하였다. 그 후 쓰시마도주의 간청으로 1423년 다시 부산포와 내이포 두 곳을 허락하였고, 1426년에는 염포를 추가함에 따라 삼포제도(三浦制度)를 확립, 제포 30호, 부산포 20호, 염포 10호의 왜관을 설치하여 항거(恒居)왜인을 거주하게 하면서 도항왜인의 접대와 교역을 허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