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였다. 인터넷 자료 : 네이버 백과사전 - http://100.naver.com/100.nhn?docid=117555
이러한 정의로부터 왜관이 크게 대일 무역과 외교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고 그 지명과 위치가 꾸준히 바뀌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우선 이런 변화에 초점을 맞춰 진행해보기로 하였다.
(2) 왜관의 역사
역사는 지식의 보고라는 말이 있다. 이는 역사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여러 방면에 걸친 지식이 포함되어 있는, 과거 인간 생활에 대한 지식의 총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를 배움으로써 우리는 인간 생활에 관한 지식의 보고에 다가갈 수 있다.
아울러 우리는 역사 속의 인물과 사건을 통
역사서술에 있어서 저자는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논했다. 또한 역사서에는 합리적이 아닌 신이한 설화, 전설, 미신에 관한 것은 기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불교 역시 미신의 일부라 여겨 배척하였다.
역사 인식에 있어서 그는 한국사를 주체적으로 인식하려 하였으며, 왕조를 정통과
역사관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서술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다른 7종 역사교과서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통신사에 의한 조선으로부터의 문물 전수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이를 오로지 양국간의 인적 교류로 등치하여 서술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한국으로부터의 문물 전수가
그는 이 책에서 서양인들이 커피를 우리나라의 숭늉이나 물처럼 즐겨 마신다고 했다.
④ 1896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권유로 커피를 마셨다는 설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한국사’ 제 44권 커피의 도입에도 “특히 왕가에서 커피를 즐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