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세종시대 와일 본의 무로마치 막부시대 쓰시마 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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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의 세종시대 와일 본의 무로마치 막부시대 쓰시마 정벌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일본학과에서는 일본어를 기초로 일본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전반을 학습한다. 전공 분야가 그러하기 때문에 세종 시대와 일본에 대해서 어떻게 비교할지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처음엔 단순히 정치적인 면만으로 세종 대왕의 정치와 현 고이즈미(小泉)정권의 성격을 비교해 보려고도 생각하였다. 하지만 현재에서 바라보면 세종 대왕은 과거의 인물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의 일본 정세와 관련하여 비교해보고 싶었다.
Ⅰ. 서론1.
-세종과 세종 시대
1418년부터 1450년까지 재위한 조선왕조의 네 번째 임금 세종. 세종대왕은 가히 조선의 가장 훌륭한 임금이라고 이야기 될 만큼 훌륭한 업적을 많이 쌓았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외 정치뿐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등 조선사회 전반에 거쳐 많은 기틀을 잡고 정책을 정비했다. 또한 중앙 집권 체제를 단단히 하였고 왕실 불교를 장려하여 불교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여긴 것이었다. 세종 대왕이라 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오늘날의 한글의 시초, 훈민정음의 창제를 떠올린다. 세종 25년에 창제된 한글과 더불어 용비어천가, 동국정운, 월인천강지곡 등 오늘날까지 전해져오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수많은 작품들이 탄생하였다. 문학 면에서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음악 쪽에서도 많은 업적을 이루었는데 이는 세종 대왕의 탁월한 인재 등용에서 나온 결과라고도 말할 수 있다. 또한 유교(성리학)를 장려했는데 국가 행사와 민간에까지 유교 이념을 보급했다. 조선을 성리학의 나라라 부르게 된 것도 어쩌면 유교이념을 강하게 믿고 행해왔던 세종 대왕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황희, 맹사성, 신숙주, 정인지, 성삼문 등의 학자와 청백리는 세종대의 기틀을 탄탄히 하였고 장열실, 이천 등의 인재를 등용해 측우기를 발명하는 등,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김종서, 최윤덕 등의 훌륭한 장군들도 세종 대왕이 발탁한 이 시대의 인물이다. 이들은 세종은 북방 영토 확장과 나라의 안보를 튼튼히 하였다.
이처럼 세종 대왕은 32년 동안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나라 안팎의 정치, 문화 등에 크게 이바지 하여 우리 나라 임금 가운데에서 ‘가장’이라고 할만한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그러한 세종 대왕이 이끈 세종 시대는 여러 방면에서 타 왕조와 비교될만한 특출한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Ⅱ. 서론2.
-당시 일본의 정세
일본의 무로마치 시대는 그 전까지의 2원 정치를 물리치고 무가에 의한 단독정권을 수립한 것을 특징으로 하는 1336년부터 1573년의 일본의 정치 시대이다.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겐무(健武)정권을 쓰러뜨리고 성립된 아시카가 막부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멸망될 때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교토의 무로마치에 궁전을 세워서 무로마치 막부라 칭하며, 아시카가 시대라고도 한다.
처음의 무로마치 막부는 2두 정치로 출발했다. 형인 다카우지는 군사 통솔권 등을 관할해서 주종제적 지배권을 장악했고, 동생인 다다요시는 영지의 보증이나 재판에 대한 권한을 관할해서 통치권을 장악했다. 무로마치 막부시대는 3대 쇼군(將軍)인 아시카가 요시미츠 때에 안정기에 들어선다. 요시미츠는 당시의 내란을 수습하고 관위 승진 등으로 쇼군의 권위를 높였다. 동시에 조정의 실권을 흡수하여 야마나, 오우치 일족의 반란을 계기로 유력한 종교를 억압하고 남북조의 통일을 실현, 결국엔 전제권력을 확립한다. 이 때에 명나라에 내조하여 명으로부터 처음으로 일본국왕의 칭호를 받기도 하였고 명과의 교역도 활발하였다. 하지만 그 후 장원 제도가 붕괴되고 그 대신에 슈고 다이묘(守護大名)가 각처에서 세력을 뻗으며 세력 균형이 이루어지지만 1467년 오닌의 난이 일어나 슈고 다이묘들의 세력이 각축전을 벌이는 전국 시대를 겪은 뒤 멸망한다.
또 이 시기에는 교겐(狂言)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연극. 노[能], 분라쿠[文樂], 가부키[歌舞伎]와 함께 일본 4대 연희의 하나.
, 렌가(連歌) 일본 고유 시가의 한 장르. 한 수(首)의 와카[和歌] 31자를 5 ·7 ·5(上句)와 7 ·7(下句)로 나누어 두 사람이 읊는 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