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子學이었다. 朱子學의 忠節 사상으로 생활의 보장의 대가로서의 충절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를 부여하였다. 때문에 賴朝 이후 鎌倉武士道와 江戶時代 전기 武士道는 충절을 바치는 대상이 전자는 將軍이고 후자는 大名이라는 차이는 있어도 생활의 보장에 대한 대가로서는 동질의 것이라고 할 수 있
朱子)가 집대성 한 것이 주자학(朱子學)인데, 주자학은 이조(李朝)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의식과 일상생활의 가치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한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 정명도 이해가 절실하다.
2. 정명도 사상
가. 성선론(性善論)의 원리
1) 맹자의 성선설에 근본을 두고
朱子語類ꡕ
주희(1130-1200)는 자가 元晦이고 호는 晦翁으로 남송 徽州 婺源사람이다. 세상에서는 그를 晦庵선생이라 부른다. 일찍이 轉運副使․知府․知州․侍制․秘書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주희는 평생, 대부분의 시간을 후졘(福建)에서 강학하면서 보냈으므로, 그의 학파
朱子全書)》를 입수해 온 후 정부에 건의하여 국학을 세우고 대성전(大成殿)을 건립하여 공자를 존숭하는 등 유교 부흥에 힘썼다. 그는 또한 한국에 주자학(朱子學:性理學)을 처음 수입하였으므로 주자학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그의 문하에는 백이정(白正)·우탁(禹倬)·권부(權溥) 등이 있어 모두 주자
朱子의 <武夷櫂歌>부터 시작하여 당대에 국내에서 창작되었던 다양한 구곡가계 시가 작품을 한데 모아 수록한 것이다. 이처럼 특수한 자료가 창출된 것에는 일정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실제로 구곡가가 성리학적 심성 도야와 무관하지 않은 장르였던 만큼 당대 사대부에게 있어 구곡가계 시가
朱子 등이 당시의 불교와 도교를 虛學으로 지칭하는 대신 자신들의 성리학을 실학으로 지칭하며 明末靑初에는 陽明學을 기반으로 朱子學을 虛學으로 비판하였으며,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에도 이미 眞儒가 實學이라고 했던 李齊賢과 佛敎에 대한 性理學을 實學이라고 말한 安軸와 같은 학자들이 있었
朱子)가 이것을 집대성(集大成)해 형이상학(形而上學)으로서의 경학(經學)을 수립하여 소위 송학(宋學)을 대성(大成) 시켰다고 알려지고 있다.
저서에는 《태극도설(太極圖說)》 《통서(通書)》가 있으며, 수필 《애련설(愛蓮說)》에는 그의 고아한 인품이 표현되있다. 남송의 주자(朱子)는 염계가 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