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에서 볼 수 있듯이 다시 한국 남학생들의 장발과 여대생들의 거친 옷차림은 성적 분할 체제를 혼돈시키는 일종의 유니섹스 모드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이를 당장 의식적인 저항이기보다는 모던하고 자유로운 자아에 대한 욕망을 투사하기에 충분한 매개가 될 수 있었다.
이기간은 흔히 우리 문학사의 암흑기로 불린다. 일본은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국력을 다해 대륙침략에 응했다. 여기서 어느 정도의 전과를 얻은 일본은 연합군이 응징하기 시작하자, 1941년 12월 8일 태평양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이미 일본이 식민지화한 한국은 대륙침략의 병참기지로서
Ⅰ. 개요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근대문학은 세계에 대한 선택적인 접근과정에서 외부지시 관계를 내포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예술체계 외적인 소통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미학적 소통이 가능해 진다. 미학적 소통의 방식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자폐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
하고 있는데 반해 보다 구체적 대상에 접근 문학성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 창가가 지니는 문학사적 의미가 되고 있다. 창가는 개화기 시가 장르 중 가장 오래 지속되었고 학교 교과목으로서 창가에 이르기까지 대중에 널리 보급되어 민중적 정서를 환기하는데 크게 공헌했던 점은 부인될 수 없다.
우리가 이상의 문학을 접하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은 대체로 난해함 또는 당혹감 정도일 것이다. 그가 쓴 소설이나 시들을 살펴보면 내용적인 측면에서나 형식적인 측면에서나 다른 작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발표 당시에도 많은 비난과 반발을 가져 왔으며, 현대를 사는
1. 조명암의 시「북행열차」와 그의 가요시 작품에 대한 새로운 이해
교수님의 설명에서처럼 모더니즘을 통해 문학의 길에 접어들었던 그가 모더니즘의 현실도피적이고, 실질이 없는 기교주의와 반역사주의에 일찍이 절망하고 있었다는 것, 모더니즘시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가요시라는 장르를 통해서
고려 문학의 주류는 (한문학)에 있었다. (과거) 제도의 실시와 중국 문물의 수입으로 한문학이 융성했기 때문이다.
향가의 전통은 균여대사의 (보연십원가)를 거쳐 예종의 (도이장가)에 이어졌으나, 한문학의 발달로 한문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자 향가계 문학은 사라지게 되었다. 반면 한자에 의한
1930년대 말엽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 특징 지워질 수 있다. 이 무렵은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와 더불어 모더니즘의 팽창으로 인한 문학적 건조성과 형식성이 짙은 시기였다. 이러한 삭막한 바람을 헤치고 나타난 시인으로 유치환(柳致環)과 서정주(徐廷柱)를 꼽을 수 있다. 바로 그들의 시는 인간의
Ⅰ. 들어가는 말 - 작가의 현실인식
문학은 사회의 전부를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작가로 하여금 선택된 사회가 반영되며, 그 매개체로 작가의 눈, 즉 작가의 현실인식이 형상화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한 작가의 삶을 연구하면서 우리는 그가 당면했던 문제들과 시대적 고통을 알 수
Ⅰ. 한국문학(한국문학사) 1910년대 문학
1910년대는 우리 문학의 근대적 성격 형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시기인바, 이 때 항상 그 논의의 중심에 놓였던 것이 「무정」이다. 기존의 연구사에서 근대 문학의 형성은 곧 「무정」의 근대적 성격 여부로 판별되곤 했다. 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