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관한 중국인들의 전통적 견해
제1장 도학적 관점(도덕 교육과 사회 비평)
1. 입장
(1) 정통적인 유가(儒家)들
(2) 시는 근본적으로 도덕 교훈의 일종.
(3) 시의 기능은 사회적정치적 사건의 논평 포함.
(4) 공자를 그들 견해의 典據로 인용.
① 공자 -『논어(論語)』: 시경을 도덕적 영향을 발휘하거나
논어(論語)
사. 조세제도
1)철법
수입에 따라 세금을 받고, 힘에 맞게 일을 시킴
2)정전제
땅을 우물정자로 나누어 8개의 사전과 한 개의 공전으로
나누어 공전에서 나오는 작물을 세금으로 징수
무릇 어진 정치는 반드시 경계를 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경계가 바르지 않으면 정전이
논어(論語)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에 머무르는 것이 아름답다.
인을 택하여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
오직 어진 사람만이 진정으로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고,
진정으로 사람을 미워할 수도 있다.”
“군자는 세상일에 있어 꼭 해야 할 것도 없고,
결코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논어(論語): 공자가 "중국은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군자가 사는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라. 소학(小學): 공자가 말하기를 "소련(小連)과 대련(大連)형제는 부모가 돌아가서 3년간을 슬퍼했으니 이들은 한국인의 아들이다"고 했다.
마. 동이열전(東夷列傳): 공빈이 말하기를 "한국은 비록 크지
논어(論語), 위령공(衛霝公)편에는 “周而不比 群而不黨”(주이불비 군이부당)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문구를 해석하자면 “군자는 다른 이들과 두루 사귀되 서로 비교하지 않고, 함께 어울리되 파당을 짓지 않는다.”는 뜻이다. 동양 유교 철학의 창시자인 공자마저도 파벌을 좋지 않게 보았던 것이
논어』(論語) 제2권 위정편(爲政篇)에서 제시하는 중년기는 불혹(不惑)과 지천명(地天命)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시기가 되면 젊은 날에 품었던 주관적 확신성을 넘어서는 보편적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불혹과 지천명의 나이에서 그려지는 중년은 주변의 복잡한 사안을 자신있게 풀어나
論語이다. 논어 속의 공자가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상적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가장 중요한 이미지는 聖人과 君子였다. 첫째로, 詩書에서는 왕의 이상상이던 성인을 인간 이상상으로 재해석하여 자신과 모든 인간의 최고 이상으로 하였다. 공자가 성인이라는 칭호를 준 유일한 인물
논어(論語)』(반월간)라는 잡지를 창간한 1932년이었다. 이것은 그 당시 중국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유형의 서구식 풍자잡지였다. 이 반월간지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곧 2개의 출판물을 더 선보였다.
1935년에 임어당은 수많은 영문저서 가운데 첫 번째인 『내 나라 내 민족(My Country and My Peo
논어(論語)》·《맹자(孟子)》
의 뜻을 부연(敷衍)해서 책을 엮은 것이 1만 5천 권이나 되므로, 천자(天子)가 그의 의(義)를 아름답게 여기고, 제후(諸侯)들은 그의 이름을 사모하였다.
본편 우리가 흔히 <호질>이라며 인용하는 부분은 ‘호질 이야기’를 짓게/쓰게/얻게 되는 과정을 다룬 프롤로그와 ‘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