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화는 ‘저축격차’를 메울 수 있고 세계적으로 자본이 최고의 효율성을 향상시킨다.
2)저자의 반론
개발도상국들이 1980년대 및 1990년대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강권에 못 이겨 자본 시장을 개방한 뒤로 금융 위기를 훨씬 자주 경험하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는 없다.
1945년부터 1
금융위기는 주요한 경제개혁을 필요로 했으며, 동시에 경제제도의 개혁을 위한 기회를 제공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
개혁은 공공 및 민간 영역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침. 특히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한국의 전반적인 경제개혁은 다음에서 논의될 세 가지 주된 목표를 설정
한국은 지
금융및 기업부분의 근본적인 결함 등을 한국이 위기에 빠지게 된 근본 원인으로 보면서 부실금융기관의 도태-정리, 기업지배구조의 개선과 경영투명성의 확보, 금융-자본-상품시장의 전면적인 개방과 자유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위기극복을 위한 중장기적 구조조정프로그램으로 제시하고 있다.
금융및 기업부분의 근본적인 결함 등을 한국이 위기에 빠지게 된 근본 원인으로 보면서 부실금융기관의 도태-정리, 기업지배구조의 개선과 경영투명성의 확보, 금융-자본-상품시장의 전면적인 개방과 자유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위기극복을 위한 중장기적 구조조정프로그램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유화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길을 고수했던 동아시아 나라들도 90년대 금융개방 이후 경제위기를 겪었다는 사실은 무척 시사적이다. 또한 금융위기를 배경으로 개도국들을 포함한 전 세계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이 퍼져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와 세계화 그리고 세계경제의
및 식량을 비교해 보았을 때)에서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지 않고 있으나 고도로 경제가 발전한 국가와 아직도 원시 경제를 바탕으로 살고 있는 국가 또는 지역을 비교해 보면 그 문제가 심각하다. 즉 상대적인 수준에서는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부양 능력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등)은 크나큰 타격을 입게 된다. 문제는 그러한 것이 억압되어 있다가 한꺼번에 분출되었다는 것이다. 70년대 말부터 경제학계에서는 이러한 것을 알고 방향전환과 구조조정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80년대 후반이 되면서 금융의 자유화와 중소기업의 육성은 더욱 절실해 지기 시작했다.
세계화는 무엇보다도 지구화된 금융시장에서 환율이 차츰 자유화되더니 고정환율제도와 함께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각국의 경제정책을 감싸고 있던 케인스주의라는 틀이 붕괴되면서 본격화되었다. 특히 세계경제의 핵심적인 가격인 환율과 금리에 대한 결정권이 각국의 정부당국과 관료
시장의 유연성 정책, 즉 비정규직 문제가 심화되면서 사회적 갈등을 낳고 있다.
이러한 세계화의 흐름은 국가단위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었지만, 그 내용을 보면 결국 국가 이외의 새로운 행위자, 즉 다국적기업이나 WTO체제와 같은 국제기구들이 그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 주도하의
그러나 김영삼정권 당시 한국 측은 국내산업보호등을 이유로 이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바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닥치고, 대통령 방미시 이른바 “한국측의 필요”에 의해 투자협정 문제가 새롭게 한국측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리고 정부는 당시 투자협정을 대통령 방미의 성과로 선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