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함으로써 신의 관념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것은 타일러의 학설은 주지주의적(主知主義的) 종교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고, 또한 원시인에게서 꿈이 그처럼 중대한 경험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두고 논란도 있었으나, 이원론(二元論)의 사고양식을 설명하는 양식으로서 아직도 그
4) 학당
학당제도는 중국에 없는 고려의 독특한 교육기관으로서 이는 조선시대에도 계승된다. 학당은 국자감에서 교육받지 못하는 서민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향교와는 달리 서울에 있었다. 학당은 중앙에 설치된 관학, 국자감의 하위에 속하는 초중등학교 수준의 학교였으며, 성리학서인 대학, 중용
떳떳한 이치를 드러낸다고 믿었기 때문에 ꡐ예ꡑ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유교의 의례에는 관혼상제의 사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상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상례는 동양의 뿌리깊은 종법 사회를 유지시키는 원리였다. 의례의 생활화는 곧 유교가 완전히 뿌리내림을 뜻한다.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계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인 예학이 현실적으로 요청되게 되었다.
2. 시대적 배경
沙溪 金長生이 살았던 16세기 중엽으로부터 17세기 중엽에 이르는 근백년은 국내외로 다난했던 시기이었다. 안으로는 반세기(1498 ~ 1545)에 걸친 士禍가 지니자 당
연구자들의 견해이다. 즉, 중화와 이적의 중요한 차이는 거주 지역이나 혈연적 종족이 아닌 유교 정치이념의 시행여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중국 고대 화이론 가운데 주목되는 점은 이적에 대한 중화의 우월성을 논하는 중에도 이적이 중화로 변모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즉 예악